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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97

31. 종교 교육 위원회 발족(현재 청소년교육국) 교구 승격 이후 교회일치를 기본 모토로, 전교를 교회 제1의 사명으로 여기는 교구장 나길모 주교의 사목방침에 따라 교리교육 부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연중 행사로 교리경시대회가 답동본당은 물론 1961년 11월 26일에는 부평2동본당, 1962년 1월 21일에는 김포본당에서 개최되었다. 교구에서는 이러한 본당들의 호응으로 1962년 8월 24일 ‘종교교육위원회’(명도회 교리교사 연합회의 전신)가 발족되어 각 본당의 명도회 조직에 주력하면서 교리강습, 교리경시대회 등을 주관하였다. 종교교육위원회가 발족 하던 날, 나길모 주교 성성 1주년 경축을 겸한 교구교리경시대회가 개최되었다. 이어 1963년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교구 차원의 교리교사 강습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해마다 교리교사 강습회.. 2007. 8. 26.
덕적도의 슈바이처, 최분도 신부 좌) 최 신부가 병원선 바다의 별을 타고 이웃섬에 방문하자 어린이들이 뛰어나와 환영하고 있다. 우) 가정에 직접 방문하여 약을 전달하고 치료를 돕는 최분도 신부 덕적도의 슈바이처, 최분도 신부 덕적도와 연평도 본당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17년간 낯선 이국땅 서해 낙도에 파묻혀 가난한 어민들을 위해 젊음을 바친, 덕적도의 슈바이처라고도 불리는 최분도 신부이다. 미국 전통적인 가톨릭집안(10남매 중 4자매는 수녀, 3형제는 신부가 됨)의 다섯째로 태어난 최분도 신부, 1959년 한국 메리놀 본부에 나와 연평도와 인연을 맺었고 66년 4월 덕적도본당 신부로 임명되어 그곳을 영원한 선교지로 결정하고 덕적섬의 개척을 위한 의지를 굳혔다. 서포2리 대규모 간척사업은 그가 연평도.. 2007. 8. 19.
30. 답동 신용협동조합 설립 30. 답동 신용협동조합 설립 농업의 비중이 매우 컸던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농업과 수산분야의 협동조합이 관제화되어 협동조합의 정체성이 훼손당하고 있던 시점에서 신용협동조합의 자발적인 설립운동이 도시지역에서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의 한국 국민들의 대다수는 .. 2007. 8. 19.
45%의 복음화율을 기록했던 덕적도 본당 45%의 복음화율을 기록했던 덕적도 본당 1960년대에 들어 도서지방의 전교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될 무렵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는 당시 연평도 본당 주임이었던 최분도 신부에게 인천 서남쪽에 위치한 덕적도에 본당을 신설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1966년 4월 13일 덕적도 본당(설.. 2007. 8. 12.
29. 나길모 굴리엘모 주교의 착좌 1954년 윌리엄 존 맥노튼 신부는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여, 충북 청주교구의 장호원 감곡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 장호원, 북문로, 내덕동 성당에서 사목을 폈다. 그러다 1958년 인천지역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고 3년 후인 1961년 6월 6일 인천감목대리구.. 2007. 8. 12.
일치된 본당공동체의 노력, 봉사로 성장한 주안3동본당 일치된 본당공동체의 노력, 봉사로 성장한 주안3동본당 1926년 인천 남구 지역에는 주안공소가 가장 먼저 설립되었고 꾸준한 교세확장으로 1960년대 들어 주안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고 용현본당이 설립되었다. 그후 1974년 11월 9일 신기촌 신설본당(현재의 주안3동본당)에 이상철 신부가 .. 2007. 8. 5.
29. 1961년 6월 6일 인천대목구의 설정 29. 1961년 6월 6일 인천대목구의 설정 로마 교황청은 1961년 6월 6일 인천 감목대리구를 대목구로 승격시켰다. 이어 6월 21일 청주 교구의 부감목으로 활동중이던 맥노튼(한국명 나길모) 신부에게 주교라는 명의를 부여하여 인천대목구의 첫 감목에 서임하였다. 1831년 조선 교구가 설정된 이.. 2007. 8. 5.
인천교구내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소사 본당 인천교구내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소사 본당 1946년 설립된 소사본당은 인천교구내 100여개 본당 중 답동본당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33년 공소로 설립되어 10여 년간 공소예절을 지켜온 신자들은 해방이후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되자 신부님을 일주일에 한 번씩 모.. 2007. 7. 29.
27. 인천 감목대리구 설정의 배경 27. 인천 감목대리구 설정의 배경 감목 대리구는 교구의 사목을 공동 활동으로 증진시킬 목적에서 교구 내의 여러 본당들을 하나의 연합으로 결합시킨 지구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 포교지에서는 그 성격을 달리하여 장차 교구를 만들기 위한 첫 준비 단계로 적용되었다. 1958년 10월 서울 .. 2007. 7. 29.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 일가가 살았던 도화동본당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 일가가 살았던 도화동본당 도화동본당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 서울에서 내려왔던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자 ‘박순집(베드로)’ 일가가 살았던 곳으로 한일합방 이전에는 ‘쑥골’이라 일컬어졌다. 박순집은 1890년 제물포에 정착한 후.. 2007. 7. 22.
26. 도서 지방의 교세 증가 26. 도서 지방의 교세 증가 본당·병원·학교 설립 등 내륙에서 활발한 가톨릭 활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도서 지방에서도 꾸준한 교세 확장이 있었다. 1958년 강화본당을 시작으로 연평도(1959년), 백령도(1959년)가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1961년 인천교구 설정이후 영종도(1965년), 덕적도(1966년).. 2007. 7. 22.
교우들의 자력으로 이룩한 첫번째 성당, 제물포 본당 교우들의 자력으로 이룩한 첫번째 성당, 제물포 본당 제물포는 1971년 신시가지 개발 계획에 의해 각종 건물과 학교, 주택단지들이 조성되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배와 사과를 경작하는 과수농지 지역이었으나 이 지역에 주택이 건립되면서 인구가 크게.. 2007.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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