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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31. 종교 교육 위원회 발족(현재 청소년교육국)

by 세포네 200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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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승격 이후 교회일치를 기본 모토로, 전교를 교회 제1의 사명으로 여기는 교구장 나길모 주교의 사목방침에 따라 교리교육 부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연중 행사로 교리경시대회가 답동본당은 물론 1961년 11월 26일에는 부평2동본당, 1962년 1월 21일에는 김포본당에서 개최되었다. 교구에서는 이러한 본당들의 호응으로 1962년 8월 24일 ‘종교교육위원회’(명도회 교리교사 연합회의 전신)가 발족되어 각 본당의 명도회 조직에 주력하면서 교리강습, 교리경시대회 등을 주관하였다.

종교교육위원회가 발족 하던 날, 나길모 주교 성성 1주년 경축을 겸한 교구교리경시대회가 개최되었다. 이어 1963년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교구 차원의 교리교사 강습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해마다 교리교사 강습회와 교리 경시대회를 개최하여 교리교육은 물론 본당들의 일치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1964년, 명도회 조직 강화에 이어 교리연구 강화가 실시되었다. 이에 전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교리공부와 미사참여가 동시에 실시될 것을 희망했던 나길모 주교는 청소년들과 청소년들의 부모에게 교리교실 참여를 권장했다. 1월 15일부터 2주간 처음으로 시도된 교리교실은 매일 1시간의 교리와 미사로 구성되었는데, 주교좌인 답동본당에서는 매일 초등학생 480명과 중고등학생 180명이 참석했다.

나길모 주교는 제1회 교리교실을 마치자 인천 교구의 모든 본당은 3월 1일을 교리 강화 주일로 지내라고 발표하고,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교사, 혹은 어부(사람을 낚는)로서 명도회에 가입하도록 요청하였으며, 1964년 7월 18일부터 25일까지는 명도회 선생들을 위해 집약적인 수업을 실시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1962년 종교교육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발족해서 현재의 청소년교육국이라는 명칭을 갖기까지는 여러번의 변화가 있었다. 1968년에는 ‘명도회연합회’, 1980년-1983년까지는 ‘교육원’, 1984년-1986년까지는 ‘홍보교육국’, 1987년-1996년까지는 ‘교육국’, 1997년-2000년까지는 청소년국으로, 2001년-2003년까지는 ‘교육국’, 2004년에 와서는 유소년사목부와 청소년사목부로 나뉘어졌다. 2005년부터 현재는 ‘청소년교육국’으로 통합된 명칭을 갖게 되었다. 

현재 청소년교육국에서는 교리교사등록제를 실시하여 교사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체계적인 교리교사양성체계를 구축하여 종교교육 위원회가 처음 발족하게 된 의지를 유지발전 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리: 홍보실, 참고자료: 인천교구사>

 

 

 



(좌측 위부터)
1. 1984년 10월 명도회 교사 체육대회
2. 1985년 1월 교사 신년하례미사 및 근속자 표창
3. 1976년 8월 인천교구 YCS 지역대회, 김포성당 앞
왼쪽) 박문YCS, 오른쪽) 대건Y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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