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영성]/성경 속 인물51 51. 고통 중에도 희망의 기도 드린 토빗 렘브란트 ‘교황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1732-1809)은 열성적인 그리스도교인,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하이든은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는 작은 기도방이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이 그의 유한한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작은 기도방에서의 기도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이든은 동료 음악가에게 “나는 일에 지치게 될 때 작은 기도실로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제 경험으로 이 방법이 성공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하이든의 곡은 특별히 기쁨에 넘쳐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역시 기도 중에 주님을 묵상할 때 무한한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으로 춤추는 악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처럼 하이든의 곡들은 기도 자체였다. 1808년 그가 작.. 2024. 12. 29. 50.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에게 희망 준 유딧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삶을 꾸려 가는 사람만이 삶의 행복을 체험한다. 디즈레일리(1804~1881)는 영국의 수상으로 유다인의 집안에 태어났다. 영국의 영토를 넓히고, 정당제에 의한 의회 정치를 실현했던 인물이라 존경받는다. 디즈레일리는 영리하고 재주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사실 디즈레일리 개인보다 그의 환경에 문제가 있었다.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는 유다인에 대한 나쁜 편견이 존재했는데, 그는 유다인이었다. 디즈레일리는 영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였자만 영국 사회는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던 디즈레일리는 소설가가 되었고 차별이 비교적 적은 예술 분야에서는 인정을 받았다. 그는 실패를 거듭하며 진정한 영국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드디어.. 2024. 12. 22. 49. 교만 때문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우찌야왕 오래전 한 방송국에서 이란 사극이 방영되었을 때 정작 고려를 건국한 왕건보다 이상한 주문을 외우던 한쪽 눈이 먼 궁예가 주목을 더 받았다. 나도 열심히 시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궁예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 한쪽 눈을 다쳤고 늘 말썽을 피우다가 출가하여 세달사(世達寺)라는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신라 말기에 각지에서 반란이 들끓어 혼란해지자 궁예는 891년 절에서 나와 한창 득세하던 세력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삼국사기」에서 “부하들과 함께 고생하며, 주거나 빼앗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공평무사하였다”라고 한 점을 보면 그는 귀족들의 수탈에 질려 있던 백성들에게 환영받았다. 세력을 넓혀가던 궁예는 901년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 2024. 12. 15. 48. 하느님과의 관계를 부부 사랑에 비유한 호세아 예언자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스케치 부분 우리나라의 가장 젊은 세대그룹인 Z세대(1997~2005년생)를 대상으로 실시한 어느 여론 조사 결과, “결혼은 안 해도 되고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응답이 50% 이상 나왔다. 우리 미래의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출산률이다. 결혼은 사회제도이고 민주사회에서 자유로운 선택사항이지만 문제는 결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소도 많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더 큰 책임을 갖고 출산과 양육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결혼한다는 것은 자기 권리를 절반으로 하고 의무는 두 배로 걸머지는 일이다.”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의 지인들은 쇼펜하우어를 성격은 고지식하지만 의협심도 강하고 아주 재미있는 사.. 2024. 12. 8. 47. 지도자들의 불의 고발한 용감한 예언자 미카 예언자의 이콘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존경한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민중의 지도자였다. 사춘기 때는 술과 여자에 빠지고 종교적 반항심도 생겼지만 심성이 착하여 두려움과 죄책감에 곧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간디의 인생에서 힌두교 철학은 큰 영향을 주었다. 물질적 욕망을 끊고 고통이나 기쁨, 승리나 패배에 동요되지 말라는 가르침이 인생의 방향타가 되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간디는 인도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어느 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의뢰한 소송을 맡았는데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남아공에서 겪은 철저한 인종차별의 심한 부당한 차별로 그는 옥살이를 반복하며 독립운동가.. 2024. 12. 1. 46.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은 압살롬 왕자 코라도 자킨토 ‘삼일천하’로 불리는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 12월 4일 김옥균과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홍영식 등 젊은 개화당(開化黨)이 청나라에 의존하는 수구당(守舊黨)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 시도한 일종의 쿠데타이다. 우정국(郵政局) 낙성식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켜 당시 문제를 일으키던 민 씨 친인척들과 부패 관리들을 처형하고 축출하였다. 12월 6일에 개화당은 중국 내정간섭 배제, 문벌과 신분제 타파,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국민들의 평등권 확립, 조세 제도변화 등의 혁신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당시 갑신정변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혁명에 대한 민중들의 이해가 적었고 일본을 너무 쉽게 믿고 많이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의 중흥을 위해 구습의 봉건체제를 변화를 시도했던 .. 2024. 11. 24. 45. 남북 이스라엘 분열의 책임이 있는 르하브암 한스 홀바인 , 스위스 바젤 시의회당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혁명가의 길을 가게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13세에 가출을 했고 평생 애정 결핍에 목말랐다고 한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마오는 교육은 최소한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유교 경전의 기초지식을 배우다 중단하고 집안의 농장에서 하루종일 일해야 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마오는 잦은 구타로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당시 중국에는 노동력이 부족한 프랑스로 가서 일하면서 외화도 벌고 동시에 외국어와 선진문물을 배우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마오쩌둥도 프랑스에 가고 싶었지만 수중에 여비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북경대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이 기간은 그에게 엄청난 .. 2024. 11. 10. 44. 율법 준수 통해 개혁 외친 에즈라 예언자 구스타브 도레 가톨릭교회는 공의회 등을 통해 개혁을 계속해 왔다. 물론 개혁은 중요한 교리나 교회의 전승을 간직한 채 교회가 그 시대에 맞갖게 살도록 하는 변화였다. 1914년 8월 20일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 바오로를 주보로 모시는 수도회를 만들어 사회홍보 수단을 통해 선교에 종사하려고 시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현대문명의 이기는 세속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오히려 홍보 수단을 이용해서 선교에 선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의 시도를 위험하다고 악평하는 교회 내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개혁은 자고로 공격과 비판에 직면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현대의 최고 영성 지도.. 2024. 11. 3. 43. 우정과 의리의 사나이, 킹메이커 요나탄 프레드릭 레이튼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을 꿈꿨던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유세 내내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유리천장이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비유적인 경제학 용어이다. 유리천장은 직장에서 대다수 여성들,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들이 영향력 있고 수입이 많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우리나라의 예능계에서 유리천장을 깬 사람 중 한 명은 서혜진(레지나) PD라 생각한다. 그동안 이류음악 취급을 받던 트로트를 일시에 주류 음악으로 판도를 바꾸어놓았고 임영웅과 송가인 등 트로트 가수들을 대스타로 발굴해 냈다. 서 PD는 보수적인 조직의 방송국, 예능분야 안에서 적어도 유리천장을 깨뜨린 독보적인 .. 2024. 10. 27. 42.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에스테르 에드윈 롱 ,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빅토리아 내셔널 갤러리 6·25전쟁이 시작됐을 때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북한군에게 밀렸고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1950년 7월 5일에는 미군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첫 전투를 벌였는데, 세계 최강인 미군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북한군에게는 소련제 전차가 있었는데 국군에게는 전차를 파괴할 만한 화력이 없었다. 그래서 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은 북한군 전차에 직접 올라가 해치를 열고 준비한 수류탄, 화염병을 안으로 던져 제압하는 것이었다. 물론 전차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국군들은 결사대를 자원으로 뽑았다. 6·25전쟁 하면 남성들만 주로 언급되는데, 사실은 1950년 8월에 해병대 4기.. 2024. 10. 21. 41. 에돔의 멸망을 전한 예언자 오바디야 1943년 이전에는 구약성경이 가톨릭 신학생들도 읽지 못하는 금서(禁書)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에 가톨릭교회는 구약성경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자들을 구약성경에 접근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례 개혁 이전에는 주일 미사 때 구약성경의 독서가 없었으나 지금은 제1독서에서 구약성경을 꼭 읽게 되어 있다. 이단 교회는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생겨난다. 특히 구약 부분은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되어 있어 아예 전문가들 이외에는 접근을 금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신교는 오직 성서, 오직 하느님, 오직 믿음이라는 주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의 사상이나 성향을 극단적으로 거슬러 행동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설도 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구약성경를 읽는.. 2024. 10. 13. 40. 다윗에게 직언한 예언자 나단 자고로 권력자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독재자들이 국민을 돌보는 갖은 연출을 하는 것은 민심을 얻기 위해서이다. 마음을 얻는 것은 비단 정치뿐 아니라 직장이나 사회, 가정 등 모든 인간관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옛날의 왕이 가진 권력은 절대적이라 왕에게 직언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실제로 권력자에게 직언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은 예전의 일만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직언을 피하고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고 고집이 세지는 경향을 자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세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 중 하나이고 뇌의 신경세포와 접촉하여 정보가 오고 가는 부분이 줄어들어 뇌가 굳어지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경우 새롭게 생각하지.. 2024. 10. 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