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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53

성서의 인물을 마치며… 처음에 성서의 인물의 집필을 시작하면서 신문사측에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부님! 성서의 인물을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쓰지 마시고 가능하면 상상력을 동원해 주세요. 무엇보다 쉽고 편안하게 써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해할 정도로….” 그러나 글을 써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쉽게 글을 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만약 글을 쓰는 것이 마치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처럼 편안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성찰과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삶의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글은 곧 삶의 일부분이다. 때로는 글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내심이 상처받기 싫은 인간의 방어적 행동이라 생각되는 건 너무 지나.. 2006. 4. 24.
우리에게 성서의 인물을 전해준 이들 1947년 5월의 어느 봄 날. 베드윈 족의 한 소년이 염소 떼를 돌보다가 염소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염소를 찾기 위해 사해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에 돌멩이를 던졌다. 쨍그랑! 소년은 염소 소리가 아닌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소년은 친구를 불러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좁았지만 굴은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그곳에는 깨진 질그릇 조각들 사이로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두 소년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니 얇은 양가죽을 꿰매서 이은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 두루마리들에는 뭔지 모를 글자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두 소년은 그것들을 꺼내 들고 동굴을 나왔다. 그리고 두 소년은 아주 싼값에 골동품 상인들에게 두루마리를 팔았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에는 에스더.. 2006. 4. 2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 그리스도 '웃으시는 예수', 박 테클라(1957~), 2000, 작가소장  어느 날 예수님의 일행 앞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다. 예수님의 발치에 그녀를 패대기 치고는 큰소리로 떠들었다.“선생님, 모세의 법에 따르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고 똑똑히 대답하셨다.그러자 얼마 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났다. 붙잡혀온 여인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옷이 벗겨진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다가가 연민으로 가득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어서 돌아가라. 이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나는 네 마음을 다 알고 있다. 죄 속에 빠져.. 2006. 4. 24.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 '잡히신 예수', 두쵸(Duccio, 1255~1319), 대형제단화 부분, 템페라, 시에나대성당 박물관  (마르 14,50-52)예수님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다.“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 깨어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떨어진 곳에서 땅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땅에 누워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깨워 다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또 .. 2006. 4. 24.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들 행복한 사람들' , 한진섭(1956~), 1998년, 화강석, 38×40cm, 작가소장,  마르 3, 31~35예수님은 고향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이곳 저곳 타향을 돌아다니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과 제자들은 심신이 매우 지쳐갔다. 그래도 예수님은 열성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자들과 마귀 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여정은 끝이 없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여드는 군중 탓에 식사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활동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해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심지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 2006. 4. 24.
위선자의 무리, 바리사이파 사람들 '레몬을 가진 랍비', 마르크 샤갈(1887~1985), 1914년 작, 판지에 유채, 100*80cm, 노르트라인-베스트 팔렌 박물관, 뒤셀도르프.   마태 6,1∼6예수님은 당시 율법으로는 돌로 사형을 당하는 큰 죄인, 간음하다가 발각된 여인에게는 단 한 마디 꾸중도 않으셨다. 오히려 “나도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자비로움을 보이셨다. 심지어 당신을 못박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신 너그러운 분이었다. 그런데 유독 바리사이파 사람들만 만나면 흥분하시면서 욕설도 서슴지 않으셨다. 당시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거룩하게 선별된 자들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 신심도 깊고, 하느님의 율법을 거슬러 죄도 짓.. 2006. 4. 24.
예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두쵸(Duccio,1255~1319), 1308~1311, 대형제단화 부분, 템페라, 시에나대성당 박물관.   (마르 15,40∼41)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던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오랜 시간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은 드디어 오후 세시 경에 큰소리를 내시고는 숨을 거두셨다.“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예수님의 죽음을 애타게 지켜봤던 군중들은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이 죽어가는 광경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마지막까지 기도를 하며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수님의 운명은 철저히 버림받았다.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미 모두 스승의 곁을 떠났.. 2006. 4. 24.
예수와 함께 처형된 강도들 (루가 23, 39-43)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 위에 뉘어 대못을 박았다. 잠시 후 대못이 예수의 손목과 발등 위로 박혀졌다. 순간 예수의 얼굴은 일그러지면서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 후 병사들은 여럿이 달려들어 예수가 달린 십자가를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사형수인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 좌우 편에 한 사람씩 세워놓았다. 예수는 죽음을 앞둔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려 조롱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기도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못박은 병사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유다교 지도자들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쳐다보고 조롱을 했다. “어이, 거기.. 2006. 4. 23.
하느님을 찬양한 백인대장 (루가 23, 44-49 참조) 예수는 십자가형 집행 장소인 해골산이란 뜻의 골고타 언덕에 도착했다. 병사들을 지휘하던 백인 대장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죄수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형을 집행하라." 백인대장(centurion)은 백 명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로마의 고급 장교이다. 총독 빌라도의 판결 명령을 받아 형을 실제로 집행하는 책임자는 백인 대장이었다. 백인 대장은 부하들에게 십자가형을 집행하도록 명령하고 모든 과정을 모두 상세히 기록해야 했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당시에 가장 극악한 범죄에 대한 로마 최고의 형벌이었다. 그런데 이 십자가형은 주로 하류계층에게만 적용되었고 상류계층은 주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노예들에 대한 전형적인 처벌이었고, 정치적인 분쟁을 진압하기 위한 시범적.. 2006. 4. 23.
키레네 사람, 시몬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다', 지거 퀘더(1925~ ), 유화, 작가 소장, 독일.  마르 15,16-26참조빌라도 총독은 군중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예수를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병사들은 예수를 총독관저로 끌고 가서 전 부대원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웠다. 예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몇몇의 병사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의 왕 만세!” 하면서 조롱을 했다. 갈대로 머리를 치고 얼굴에 침을 뱉는 병사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도 마음 속에 깊이 숨겨둔 적개심을 예수께 쏟아 붓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예수의 옷을 다시 입혀 십자가형을 집행하기 위해 밖으로 끌고 나왔다. 예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는 무표.. 2006. 4. 23.
용기있는 성녀, 데클라 '설교하는 바오로', 모자이크, 터키 이스탄불, 코라성당.  사도 바오로가 지금의 터키의 코냐(Konya) 지방인 이코니움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 고장에 도착한 바오로 사도는 용감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시고 세례를 받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다른 지방처럼 여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오로 설교를 호감을 갖고 받아들였다. 그들 중의 한 여인이 특별히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인격에 매료되어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녀의 이름은 데클라였고 젊고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는 약혼한 몸이었다. 데클라는 3일 동안 밤낮을 창문에 앉아 바오로의 설교를 들었다."얘야, 정신 차려라. 무얼 좀 먹으려무나.. 2006. 4. 23.
비정한 여인 헤로디아 베네조 고졸리(1422~1497) '헤로데의 잔치', 유화, 22*34cm, 워싱턴 국립박물관 소장. 자료제공=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정웅모 신부  마르 6,24-29 헤로디아는 분봉왕 필립보와 결혼하였다가 그와 헤어지고 나중에 시숙 헤로데 안티파스와 결혼하였다. 이 잘못된 결혼에 대해 세례자 요한은 여러 차례 헤로데 왕에게 간곡히 진정하였다."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잘못된 점을 즉시 시정하여 주십시오.”헤로데는 왕인 자신에게 겁없이 여러 차례 간하는 세례자 요한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여론이 두려워 쉽게 세례자 요한을 무작정 처형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세례자 요한을 감.. 2006.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