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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29. 나길모 굴리엘모 주교의 착좌

by 세포네 2007.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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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윌리엄 존 맥노튼 신부는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여, 충북 청주교구의 장호원 감곡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 장호원, 북문로, 내덕동 성당에서 사목을 폈다. 그러다 1958년 인천지역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고 3년 후인 1961년 6월 6일 인천감목대리구가 인천대목구로 승격되자 같은 해 8월 24일 교황청으로부터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주교 성성식은 그해 8월 24일 고향인 미국 로렌스시 성마리아 대성당에서 거행 되었다. 

교황 대례(大禮:주일에 장엄하게 거행된 미사) 미사를 집전한 보스톤 대주교 쿠싱(Richard James Cushing)추기경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가톨릭 교회는 바로 밋셔너리(Missionary:선교사,전도사)교회인 것이다”라며 전교를 강조했다. 

주교 성성식에 이어 1961년 10월 26일 오전 11시, 주피(Xavier Zupi) 주한교황사절의 인천 교구 설립식과 주교 임명장 수여식이 답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하객으로는 주피 교황사절,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주교, 대구교구장 서정길 주교, 광주교구장 헨리 주교, 전주교구장 한공열 주교, 청주교구장 파디 주교, 춘천 교구장 퀸란 주교, 평양교구장 캐롤 몬시뇰 및 교황사절관 참사관 무톤 몬시뇰, 광주 교구 김창현 몬시뇰 등 1백여 명의 성직자와 9백여 명의 신자, 수도자가 성당을 가득 메웠다.

첫 교구장수품식과 함께 교황사절의 인천 교구 신설과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의 인천 교구 이양서가 낭독, 선포된 다음, 인천 교구에 속하게 된 신부들의 순명서약과 나길모 주교의 첫 대례미사가 봉헌되었다. 

나길모 주교의 문장은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 한국 교회의 주보인 성모마리아, 한국 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 그리고 인천 항구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나길모 주교의 모토는 “UT OMNES UNMMSINT”(모든 이가 하나 되기를, 요한17, 21)이었다. 

또한 나길모 주교는 주교 메시지를 통해 인천 교구를 방인 교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씨 곱고 겸손하며 인내성이 강한 한국 교우들의 좋은 표양을 교회에 가져와야하고, 많은 성소육성을 위해 가정의 협력과 전교를 부탁했다. 

주교좌에 착좌한 사흘 후인 10월 29일 그리스도왕 대축일부터 나길모 주교는 인천 교구의 현황을 파악하고자 답동본당을 시작으로 교구 내 본당사목방문을 시작하였다.
<정리: 홍보실, 참고자료: 인천교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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