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교회와 영성]/한국순교자245

4. 병오·병인박해 순교자 (끝) 조선 최초의 신학교 설립하고 순교의 화관을 쓴 선교사 ▲ 베르뇌 성인은 1856년 배론 신학교를 설립했다.출처=「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집」 1839년 기해박해가 끝나자 조선 교회는 다시 추스르기 시작했다. 1845년에는 조선인 첫 사제가 탄생하는 기쁨도 맛봤다.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신부와 선교에 힘쓰며 만주에 머물던 최양업 신부와 매스트르 신부를 조선으로 입국시킬 방도를 강구했다. 김대건 신부는 바닷길을 통한 성직자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다 1846년 순위도에서 체포됐고, 이는 병오박해로 이어졌다. 103위 순교 성인 중 병오박해 순교자는 9명이다. 조선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를 자양분 삼아 또다시 20여 년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조금씩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1.. 2020. 9. 30.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포졸들에게 묵주 내보이며 자수하고 함께 순교한 가족 ▲ 이매임 성녀는 포졸들에게 묵주를 증거로 보이며 자수하고 있다. 출처=「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집」 ▲ 홍병주 성인은 3대가 순교한 신심이 돈독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해박해 때 성 앵베르 주교를 숨겨주었으나 김순성의 밀고로 성 앵베르 주교와 함께 체포되었다. 출처=「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집」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다. 박해의 매서운 칼날 앞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 성인들의 순교사를 듣다 보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전한 걸까?”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 78명의 이야기를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술해 놓은 「기해일기」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 2020. 9. 30.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참혹한 고문 속에 허벅지 살 뜯기면서도 하느님 증거하다 ▲ 성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는 사위 곽씨를 앞세운 김순성의 밀고로 체포됐다. 103위 성인 중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는 70위에 이른다. 특히 가족이 많다. 가족들은 한날한시에 순교할 것을 약속하며 죽음의 길을 기쁘게 걸었다. 때로는 혹독한 형벌에 마음이 흔들린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순교로 주님 품에 안겼다. 피로 맺어지고 신앙으로 주님 안에 하나 된 가족 순교자들의 숭고한 믿음을 소개한다. 1. 기해박해 순교자 (상) 2. 기해박해 순교자 (중) 3. 기해박해 순교자 (하) 4. 병오ㆍ병인박해 순교자 김효임ㆍ효주 자매는 서울 밤섬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뒤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해 중국인 여항덕 신부에게 .. 2020. 9. 13.
1. 기해박해 순교자 (상) 기해(1839년)ㆍ병오(1846년)ㆍ병인박해(1866년) 등 잇따른 박해도 하느님을 향한 순교자들의 믿음을 꺾지 못했다. 모진 고문과 회유 속에도 신자들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고, 성직자들은 고통을 겪는 신자들 안위를 위해 스스로 관청을 찾아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기 순교자 중 103명이 한국 교회 최초로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 중에는 가족이 함께 서로의 신앙을 독려하며 신앙을 굳건하게 지킨 이들도 있었다. 일가족이 함께 순교의 길을 걸었고, 모녀, 형제자매가 서로의 신앙을 독려하며 순교의 화관을 썼다. 교회는 9월 순교자 성월이면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심을 기리며 기도한다. 특히 올해 순교자 성월에는 103위 성인화가 시성 36년 만에 완성돼 기쁨을 더하고 있다. 103위 순교 성인의 이야기를 .. 2020. 9. 6.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전야고보 · 이제현(마르티노) · 정덕구(야고보) ▨ 전야고보(?~1867) 전야고보는 청주 금봉(현 충북 청원군 미원면 월룡리) 출신으로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13살 때 보은 멍에목 교우촌 회장인 매부 최용운(암브로시오)로부터 교리를 배워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전야고보는 세례받은 직후부터 한결같은 마음으로 동정을 지키.. 2019. 12. 8.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강요한ㆍ김양범(빈첸시오)ㆍ박안드레아 ▨ 강요한(1800~1867) 강요한은 충청도 신창 어촌 출신으로 일찍이 신앙을 받아들인 아버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는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 열심히 복음을 선포해 다블뤼 주교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됐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선교사를 도와 교회에 봉사하던 그는 부인을 친.. 2019. 12. 1.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박의서(사바) ㆍ박원서(마르코)ㆍ박익서ㆍ김화숙(베드로) ▨ 박의서(사바, 1808~1867) 박의서는 수원 걸매(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 걸매리)에서 태어났다. 1866년 서울에서 순교한 박흥갑이 그의 아들이고, 1867년 수원에서 함께 순교한 박원서(마르코)와 박익서는 그의 동생들이다. 박의서의 집안은 선대에 이미 아산만 방조제 축조와 간척 사업을 주도.. 2019. 11. 24.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정베드로 서태순(베드로) 김홍범(요한) ▨ 정베드로(?~1867) 정베드로는 경기도 이천 단내(현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단천리) 출신으로 재종조부(할아버지의 사촌 형제)인 정은(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1866년 12월 19일 광주 포졸들이 단내를 덮쳤을 때 그는 옷을 잡고 매달리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 2019. 11. 17.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유마오로 권중심 이요한 문막달레나 정은바오로 ▨ 유마오로(1821~1866) 유마오로는 경기도 안성 사람으로 부모에게 가톨릭 신앙을 배웠으며 장성한 뒤 전마리아와 혼인했다. 1868년 서울 좌포도청에서 순교한 유안드레아가 그의 장남이고, 1879년 서울에서 순교한 유요셉이 그의 차남이다. 유마오로는 안양 수리산 교우촌(현 경기도 안양시.. 2019. 11. 10.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김사범 · 여기중 · 고시수 야고보 ▨ 김사범(?~1866) 김사범은 충청도 청주의 양반 출신으로 온양 방아사골(현 충남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에서 살았다. 그는 여섯 형제 가운데 맏이로 성품이 굳세고 의연했으며, 어려서 입교해 교리에 밝은 데다 독실하게 믿고 실천했다. 그러던 중 다블뤼 주교가 방아사골로 오자 그는 그곳.. 2019. 11. 10.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윤평심 · 홍창룡 · 민윤명 프란치스코 ▨ 윤평심(?~1866) 윤평심은 충청도 직산 사람으로 1838년 이전에 입교했으며 이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웃에 교리를 전하는 데 노력했다. 또 다블뤼 주교나 오메트르 신부가 자신의 집을 방문할 때면 이웃 교우들을 초청해 성사를 보도록 배려했다. 이때 이웃에 살던 홍창룡이 그를 .. 2019. 10. 27.
[하느님의 종 132위’ 약전] 김아우구스티노 · 서유형 바오로 · 박루치아 ▨ 김아우구스티노(1805~1867) 김아우구스티노는 청주 갈매골에 살던 양반으로 젊어서 천주 교리를 배웠으나 형이 입교를 막아 가족을 데리고 천주교 신자들이 사는 문경 한실 교우촌으로 이주했다. 그는 한실 교우촌에서 가족과 함께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2019. 10. 2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