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영성]/김대건신부 200주년13 (11) 김대건, 가르치다 ‘모든 이는 주님 앞에 평등’ 조선 민중 일깨우다 세상과 인간, 거룩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깨우치도록 알기 쉬운 비유로 교리 설명 상대방의 입장 고려한 가르침 모든 신자들을 벗으로 부르며 보편적 가치인 평등 사상 전파 탁희성 ‘옥중영세(獄中領洗)’. 포도청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담았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사제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는 ‘가르치는 직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에서 “사제들은 신앙의 교육자로서 스스로 또는 다른 이들을 통해, 모든 신자가 각기 성령 안에서 복음에 따라 자기 소명을 계발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그 자유와 실천하는 진실한 사랑에 이르도록 보살펴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2021. 6. 27. (10) 김대건·최양업 기도하다(하) 하느님 자비 간구하며 순교 고난 기꺼이 받아들여 순교 앞둔 최양업 마지막 편지 죽음 문턱에서 청한 주님 자비 그가 남긴 편지 모든 기도에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언급하며 하느님 자비에 의탁 조선 입국로 개척 나선 김대건 하느님 자비로 위기 모면하기도 옥중에서 다가올 순교 기다리며 주님 자비 청하는 편지 남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처럼 “교회는 하느님 자비를 외치는 기도를 한시도 잊지 않는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이고, 그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지만, 위태로운 시기에는 그 기도가 더욱 간절하기 마련이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하느님의 종 최양업(토마스) 신부에게도 그랬다. 하느님 자비를 간절히.. 2021. 5. 23. 김대건·최양업 기도하다 (상) 난관 닥칠 때마다 성모님의 보호에 매달려 극복 김대건, 조선 입국 시도할 때 마리아께 전구 청하며 한 발짝 폭풍우 만나고 탈진 상태에도 동료들에 성모 상본 보여주며 용기 잃지 않고 기도하도록 해 성모성심회 가입했던 최양업 평소 마리아 도움 자주 언급 신자들에 묵주기도 가르치고 묵주 만드는 법도 익히게 해 교회는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해 신자들이 특별히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며,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고,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도록 권고한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박해 시대를 살아가던 신자들이 마리아를 깊이 공경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이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하느님의 종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기도하는 모습에서도 마리아를 향한 깊은 신심이 드러난다. 이번 편에서는 마리아의 전.. 2021. 5. 23.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시간을 걷다] (7) 김대건 제작하다 조선에 입국할 선교사들 인도할 바닷길을 열다 한양에서 4개월가량 머물던 중 바다 통한 입국로 개척 돕기 위해 한성부 서고 지도 바탕으로 제작 황해도와 서·남해 섬들 상세히 표시 지리정보 뿐 아니라 사목여정 담아 최근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담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독도를 둘러싼 역사 왜곡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도에 관한 역사 왜곡이 등장하면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이름이 오르내리곤 한다. 김대건이 독도에 관한 일본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 바로 ‘조선전도’를 1845년 제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대건이 ‘조선전도’를 제작한 시간을 함께 걸어 본다. 김대건의 ‘조선전도’. 서양에 소개된 조선의 첫 지도는 아니지만, 정확도가 뛰어나고 조선의 지명.. 2021. 4. 18.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시간을 걷다] (5) 김대건 서품받다 조선에 복음 뿌리내리고 교회 자립할 수 있는 토대 마련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는 방인사제 양성이 첫째 목표 현지 교계제도 정착시키고 복음의 토착화 위한 방안 유학 생활 난관 극복하고 첫 방인사제 된 김대건 신부 조선 입국로 개척에도 기여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부를 때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邦人)사제다. 방인사제는 그 나라 출신의, 그 나라의 사제를 의미한다.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은 ‘김대건’이라는 개인의 사제서품 그 이상으로 방인사제 서품이라는 의미가 부각된다. 방인사제로서 김대건의 서품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방인사제를 염원한 선교사들 “…이 모든 것이 방인사제를 더욱 필요하게 만듭니다. 신부님, 저는 방인사제 양성의 가능성을 가지고 싶습니다. 조선교회는 곧 .. 2021. 3. 10.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시간을 걷다] (3) 김대건 유학하다 낙제생처럼 평가됐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위기 극복 동기 중 가장 늦게 선발돼 라틴어와 기본 소양 저평가 복통·두통 등 건강 문제 겪어 힘든 상황에도 실력 갈고 닦아 라틴어·프랑스어·중국어 구사 지적됐던 성격도 용기로 승화 지리학, 항해술 조예 깊어져 신학생으로 발탁된 최방제(프란치스코),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오늘날 우리는 이 세 사람을 최초로 서양의 근대식 교육을 받은 유학생으로 기억한다. 역사 안에서 참으로 빛나는 이력이지만, 이들의 유학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김대건·최양업은 어떻게 유학생활을 했을까. 이번 편에서는 두 신부가 유학시절을 보낸 시간을 들여다본다. ■ 낙제생 김대건 낯선 환경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 낯선 사람들 속에서 걷는 외로운 배움의 길. 일반적으로는 그 정도가 .. 2021. 2. 25. 그들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5·끝) 장발 화백의 김대건 신부 전신 초상에 ‘한국의 첫 사제 순교자’라 소개 ▲ ‘복자 김대건 신부’ 에카르트는 “루도비코 장이 그린 복자 김 안드레아 신부 용산 서울 신학교의 한국의 첫 사제 순교자”라고 소개했다. ▲ 「그리스도교 미술(Die christliche Kunst)」 표지. 하단 박스 안에 덕원(한국) 베네딕도회원 안드레아 에카르트의 이름과 논문 제목(Ludwig Chang und Die christliche Kunst in Korea)이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Die christliche Kunst)」 1929년 3월호에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가 소개되었다. 「그리스도교 미술」은 1904년~1937년 그리스도교 미술과 미술사를 주제로 독일 뮌헨에서 간행하던 잡지이다. 표지와 본문 17장으로 구성.. 2021. 2. 7. 성 김대건 신부 미공개 자료 공개 한국교회사연구소, 1925년 시복식 전후 보편교회 자료 소개 ▲ 베드로 사도회 소식지에 실린 김대건 신부 초상화.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식이 거행된 1925년 전후로 보편 교회 안에서 소개된 김대건 신부 관련 미공개 자료 5점을 최근 공개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공개한 자료는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산하 기구인 교황청 베드로 사도회 선교지(1925년)와 베드로 사도회 네덜란드지부 선교지(1922년), 프랑스 가톨릭 잡지 「르 펠르항」(Le Pelerin, 1906년 4월호와 1925년 7월호), 독일 「그리스도 미술」(Die Christlische Kunst, 1929년)에 실린 김대건 신부 관련 내용이다. 이 자료들은 고문헌 수집가 이돈수(.. 2021. 1. 27. 그들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4) 파리외방전교회 소식지에 김대건 신부 자필 서명이 그대로 실리다 ▲ 복자 김대건 신부의 자필 서명이 실린 「아날」 내지. 편의상 자필 서명지가 옆으로 실렸다. 위의 것은 복자 샤스탕 신부의 것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파리외방전교회는 아시아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 교구 소속 신부들로 이루어진 선교회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파견 선교사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시기마다 다양한 잡지를 발행했는데 이는 선교 경비 마련은 물론 성소자 모집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1870년에 1036명이었던 선교사 숫자는 1910년에는 3046명까지 늘어났으며 매년 50여 명씩 떠나는 선교사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파리외방전교회 잡지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한 잡지는 1841년에 발간된 .. 2021. 1. 27. 그들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3) 복자 김대건, 전교기구의 ‘본토인 신학생 후원 안내’ 모델이 되다 ▲ 앞면 - 김대건 신부 초상화 아래 ‘복자 김 한국의 순교 사제’ 그리고 ‘본토인 신학생을 위한 기도’라고 되어 있다. ▲ 뒷면 -본토인 신학생을 위한 기도문과 베드로 사도회 후원회원 소개글. 이돈수(가밀로) 소장.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청 전교기구 베드로 사도회의 프랑스 파리와 리옹 지부에서 발행한 「본토인(邦人) 신학생을 위한 기도문」이다. 앞면은 복자 김대건 신부의 초상이고 뒷면은 기도문과 후원회원 관련 내용이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1857년 9월 24일 김대건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고, 비오 11세 교황은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 2021. 1. 27. 그들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2) 20세기 초 프랑스 교회 주간지에 김대건 신부의 순교 장면 삽화 실려 ▲「르 펠르항」 제2519호 표지. 「Le Plerin」(르 펠르항)의 제호는 ‘순례자’라는 뜻으로 프랑스 3대 가톨릭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바야르 프레스(Bayard Press)에서 1872년 창간했다. 창간 당시에는 뉴스레터 형식이었으나 1877년에 기사와 삽화를 게재하는 주간지로 체제를 바꿔 발행하기 시작했다. 주간지의 크기는 가로 18.3cm, 세로 25.5cm이다. 「Le Plerin」은 교회 소식 외에도 조선에 대한 다양한 소식을 원색 삽화와 함께 실었다. 19세기에 발행된 삽화 중심의 신문이나 잡지는 독자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시각적 자극과 환상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경향은 1839년 최초의 사진.. 2021. 1. 17. 김대건 태어나다 숱한 역경 이기고 목숨 바쳐 이 땅에 복음의 씨앗 심어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탄생 15세 때 세례… 신학생 발탁 건강과 조선 입국 문제 딛고 꾸준하게 신학 공부 이어가 1845년 중국에서 사제수품 짧은 시간 신자들 돌보다 혹독한 고문 뒤 1846년 순교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어찌하여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천주교를 믿는 거요? 그 교를 버리시오.”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믿는 거요. 우리 종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주오. 나는 배교하기를 거부하오.” “배교하지 않으면 곤장으로 때려죽이겠소.”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나는 결코 우리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용맹했던 순교자 김대건의 모습을 기.. 2021. 1. 1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