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설정 80돌 기획-중화, 관후리본당(중)
중화본당 : 신자 660명, 공소 9곳, 신심단체 5개, 사제 1명, 성심학원 및 성심유치원, 본당 출신 성직자 4명(1949년 현황). 관후리본당 : 신자 2231명, 전교사 5명, 사제 2명, 신심단체 7개, 사회복지시설 및 학교 5곳, 공소 3곳, 본당 출신 성직자 7명(1936년 현황). 신앙의 종소리가 끊긴 지 50여년이 지난 현재로 봐도 평양교구 두 본당 공동체 교세는 만만찮다. 당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린 평양의 그리스도교 복음화 양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 가톨릭교회는 당시 교육사업과 사회복지활동을 통해 한창 선교 기반을 다져나가는 터였다. 하지만 분단과 전쟁은 '순교'를 낳았고 교회공동체에 '침묵'을 강요했다. "성모님, 왜 보고만 계십니까? 지금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고 언제 도와주시..
2007.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