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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평양교구 설정 80돌 기획-중화, 관후리본당(하)

by 세포네 2007. 2. 19.

지학순 주교 등 배출한 '성소 요람'

 지금이야 평양시와 합쳐졌지만 중화본당이 자리한 중화 지역은 '평양교구 신앙의 못자리'답게 수많은 성직자와 한국 현대사의 거봉을 배출해낸다. 성직자로는 지학순(초대 원주교구장) 주교, 김진하ㆍ유봉준ㆍ김광혁(청주교구) 신부 등을 냈고, 우리나라 가톨릭교회 대표적 평신도로 제1공화국 국무총리 및 부통령, 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운석(雲石) 장면(세례자요한, 1899~1966) 박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관후리본당 또한 김필현ㆍ조문국ㆍ서운석 신부와 이병만ㆍ김득권ㆍ서우석 신부, 현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인 황인국 몬시뇰 등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 요람'이다. 이번호로 중화, 관후리본당 사진 연재를 마무리하고, 다음호에는 평양교구 설립 당시 사진과 교구 관련 사진을 연재한다. 사진제공=메리놀외방전교회,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준비위원회  

전대식 기자  오세택기자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이 타던 미끄럼틀]

 "어, 이건 내가 타던 미끄럼틀인데…."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은 최근 이 사진을 접하자마자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향수에 젖었다. 해방 전 1940~41년쯤이니 자신이 대여섯살 때 관후리주교좌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에 다니며 직접 타고 놀던 나무 미끄럼틀이었기 때문. 성당 뒷마당에 있던 유치원 미끄럼틀을 타려고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는 소녀들과 계단 꼭대기에서 무엇인가 먹고 있는 소녀, 다리를 벌린 채 신나게 미끄럼틀 경사로를 내려오는 소년들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1930년대 후반 무렵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동강철교와 소녀들]

 1940년대초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 평양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대동강에서 두터운 통나무로 엮은 뗏목에 두 소녀가 올라 타 있다. 활짝 웃고 있는 왼쪽 소녀는 빨래를 한 듯 옷가지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있고, 오른쪽 소녀는 멋쩍은 듯 앞치마를 잡은 채 카메라를 바라본다. 뒷쪽엔 6ㆍ25전쟁 때 폭격으로 끊어지기 전 대동강 철교가 보인다. 추레한 한복에 버선, 고무신, 머리 한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모습이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신축 중인 관후리성당과 평양교구장]

 1950년 9ㆍ28 서울 수복 이후 북진 당시 평양교구청에서 캐롤 안 몬시뇰이 어렵게 회수한 사진. 1949년 신축 공사 중이던 관후리성당에서 당시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부주교(현재의 총대리 직책) 김필현 신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제에 빼앗겨 헐린 성당 부지를 1946년 3월29일 평양시 인민위원회로부터 회수, 신축에 들어가 이듬해 9월1일 정초식을 가진 관후리성당은 1948년에 외형을 거의 다 갖췄다. 홍 주교와 김 신부는 1949년 5월14일, 6월에 각각 북한 당국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영문 잡지 보는 수도자들]

 초창기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들과 메리놀수녀회 수녀들(아래쪽 가운데 옅은 색 수도복을 입은 2명). 1930~36년 제2대 평양교구장을 지낸 존 E. 모리스 몬시뇰이 1932년 6월27일 설립한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는 국내 첫 한국인 수녀회로, 당시 관후리성당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상수구리 257 기와집 두 채에서 출발했다. 사진은 상수구리 모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입회자들 중 1935년 6월27일 첫 청원을 마친 수녀들이 수도회 지도를 맡았던 메리놀수녀회 수도자들과 메리놀회에서 나온 영문 잡지 「멀리 선교지에서」를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 청원자들은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하나로 만든 듯한 검정 장삼에 팔꿈치 위까지 내려오는 '어깨 망토'(Cape)를 걸쳤다. 이 망토에는 희고 좁은 옷깃(Shirt Collar)이 달려 있고 반투명 검은 수건은 수도복과 조화를 이뤄 세련된 모습이었다.

[관후리성당 정문과 사제관]

 1900년 봄 벽돌조 고딕 양식으로 평양 관후리 장대현(將台峴)에 세운 관후리성당 정문. 1944년 1월 초순 일제에 의해 고사포 부대 진지로 강제징발돼 헐리기까지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 평양교구의 중심지 역할을 한 관후리성당 정문은 아주 소박한 전통 기와지붕을 얹어 만들었다. 성당 정문 앞에 한복을 입고 곱게 머리를 땋아내린 소녀가 동생을 업고 서 있다.<사진 왼쪽> 평양교구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관후리성당에는 또 양식풍 사제관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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