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영성]2400 성화로 본 성령 강림 대축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그리스도 파스카 완성 2006. 6. 6. (4) 1949년 ‘대한 천주교 총연맹 결성’ “교구대표자 七十여명 회동 최고 최대의 단체 결성…” “大韓天主敎總聯盟結成 서울교구 연합청년회의 주최로 八월 二十二일부터 동 二十六일까지 가톨릭 하기대학강좌를 열었고 이를 기회로 하여 동 二十六일 오후 二시에 서울 명동대강당에서 천주교총연맹을 조직하였다. 서울교구를 비롯하야 각교구대표자 七十여명이 회동하야 전국적 최고 최대의 단체 대한천주교총연맹을 결성하게 된데 대하여서는 총재 노주교각하의 열열하신 지도와 서울교구 유지제씨의 분투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연맹의 탄생을 축복하며 그의 발전을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이었다. 한국교회는 해방의 기쁨을 민족과 함께 나누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민족의 해방을 주보인 성모님.. 2006. 5. 15. (3) 1933년 ‘서울대교구장 뮈텔 대주교 선종’ “경탄하고 애통하온 말삼 대중은 엇지 다하오릿가” “謹 근 悼 도 故 고 閔大主敎 閣下 각하 지난달 二十三일 오전에 우리는 대주교각하의 서거하옵신 부음을 듯자왓나이다 각하의 옷깃에 어린양가치 무럭무럭 자라나는 十여만대중은 경탄하고 애통하온 말삼 엇지 다하오릿가/생각하옵건대 각하께옵서 우리반도에 처음 나오실때는 군난의 험한 풍운이 아직도 살아지지 아니한 거츨은 황무지 뿐이엇나이다/수업는 희생자의 피로써 세례를 바든 반도의 강산은 아직도 깊히 든 잠을 깨지못하고 악마의 손이 주야로 침노하고 있엇나이다/각하께옵서는 얼마나 쓰린 고초를 당하셧나잇가/그러나 주의 은총이 이 땅에 풍성히 나리고 조상의 공적이 헛되지 아니하야 신교(信敎)의 자유가 허락되엇스매 각하에 마음도 다소간 안심은 어덧사오리다.../각하여 천국.. 2006. 5. 15. (2)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이날을 긔념하고 축하… 다같이 즐겨용약하라” “宣선 傳전 文문 三천리강산 이땋에 진리의 빛 천주의 복음이 전한지 一백四十八년이오 조선교구가 설정된지 백년이다. 우리는 이날을 긔념하고 축하하며 천주의 진리를 四해에 외치노니 모든이는 다 같이 즐겨용약하라. … 거금 백년전에 비로소 로마 교황청의 재가로써 정식으로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파리외방전교회가 이땋에 권교할 책임을 맡앗으니 그때의 신자수효는 六천명이엿다.” ‘天主敎會報’ 1931년 10월 1일자 1면에는 ‘祝朝鮮敎區設定百週年記念’이라는 커다란 제목 밑에 복음이 조선 땅에 전해진지 100년을 기념하는 경축과 새로운 다짐의 글이 실렸다. 그로부터 100년전인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792년 이래 북경교구장 주교의 개인적 보호와 지.. 2006. 5. 15. (1)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사 80장면 시대적 역경 딛고 아시아 복음화 주역으로 해외원조·선교소명·생명운동 등 활발히 전개 민주화운동·인권수호 등 예언자적 소명 실천 90년대 들어 냉담자 증가, 질적성숙 절감 때는 민족에 대한 혹독한 억압의 시기였던 1927년 4월. 한 줌의 평신도들이 뜻을 모아 한국 가톨릭 언론의 씨앗을 뿌렸다. 비록 그 처음은 보잘 것 없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 씨앗은 이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바야흐로 80주년의 역사적 시기를 앞에 두고 있다. 한국 가톨릭 언론의 대명사라 할 가톨릭신문의 창간은 척박한 교회 문화의 토양을 기름지게 할 밑거름이었다. 교회와 함께 해온 가톨릭신문 79년 때마침 가톨릭신문의 창간과 그 79년의 역사는 유례 없는 격동기였던 한국 근현대사 1백년과 궤를 같이 했다. 박해의 터널.. 2006. 5. 15. 예수와 제자 요한 “예수와 제자 요한”, 1330년경, 떡갈나무에 채색, 베를린 시립미술관, 독일 이 아름다운 목조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여기는 중세의 신비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최후의 만찬 때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시자, 바로 예수 곁에 있던 요한이 예수의 가슴에 기대며 ‘그가 누굽니까?’하고 묻는 장면을 정애넘치게 표현한 작품이다. 한 손으로는 예수의 손을 잡고 마치 예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심장의 고동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하는 표현이 다정하고 따스하다. 2006. 5. 7. 놀리 메 탕제레, 부활 “놀리 메 탕제레, 부활”(부분)(Noli me tangere), 1302-06년,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 프레스코화,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 이탈리아 14세기 초 등장한 이탈리아 회화의 거장 조토는 휴머니즘이 넘치는 표현으로 투명하면서도 깊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입체감 있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그려낸 화가이다. 부활한 예수를 알아본 여인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라는 수수께끼같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예수는 과감하게 화면 밖, 이 세상 속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다. 2006. 5. 7. 성서의 인물을 마치며… 처음에 성서의 인물의 집필을 시작하면서 신문사측에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부님! 성서의 인물을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쓰지 마시고 가능하면 상상력을 동원해 주세요. 무엇보다 쉽고 편안하게 써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해할 정도로….” 그러나 글을 써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쉽게 글을 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만약 글을 쓰는 것이 마치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처럼 편안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성찰과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삶의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글은 곧 삶의 일부분이다. 때로는 글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내심이 상처받기 싫은 인간의 방어적 행동이라 생각되는 건 너무 지나.. 2006. 4. 24. 우리에게 성서의 인물을 전해준 이들 1947년 5월의 어느 봄 날. 베드윈 족의 한 소년이 염소 떼를 돌보다가 염소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염소를 찾기 위해 사해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에 돌멩이를 던졌다. 쨍그랑! 소년은 염소 소리가 아닌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소년은 친구를 불러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좁았지만 굴은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그곳에는 깨진 질그릇 조각들 사이로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두 소년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니 얇은 양가죽을 꿰매서 이은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 두루마리들에는 뭔지 모를 글자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두 소년은 그것들을 꺼내 들고 동굴을 나왔다. 그리고 두 소년은 아주 싼값에 골동품 상인들에게 두루마리를 팔았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에는 에스더.. 2006. 4. 2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 그리스도 '웃으시는 예수', 박 테클라(1957~), 2000, 작가소장 어느 날 예수님의 일행 앞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다. 예수님의 발치에 그녀를 패대기 치고는 큰소리로 떠들었다.“선생님, 모세의 법에 따르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고 똑똑히 대답하셨다.그러자 얼마 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났다. 붙잡혀온 여인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옷이 벗겨진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다가가 연민으로 가득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어서 돌아가라. 이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나는 네 마음을 다 알고 있다. 죄 속에 빠져.. 2006. 4. 24.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 '잡히신 예수', 두쵸(Duccio, 1255~1319), 대형제단화 부분, 템페라, 시에나대성당 박물관 (마르 14,50-52)예수님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다.“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 깨어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떨어진 곳에서 땅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땅에 누워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깨워 다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또 .. 2006. 4. 24.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들 행복한 사람들' , 한진섭(1956~), 1998년, 화강석, 38×40cm, 작가소장, 마르 3, 31~35예수님은 고향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이곳 저곳 타향을 돌아다니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과 제자들은 심신이 매우 지쳐갔다. 그래도 예수님은 열성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자들과 마귀 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여정은 끝이 없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여드는 군중 탓에 식사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활동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해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심지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 2006. 4. 24. 이전 1 ··· 157 158 159 160 161 162 163 ··· 2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