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

by 세포네 2006. 4. 24.

<= (사진설명)
'잡히신 예수', 두쵸(Duccio, 1255~1319), 대형제단화 부분, 템페라, 시에나대성당 박물관

 

 

(마르 14,50-52)

예수님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근심과 번민에 싸여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 깨어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떨어진 곳에서 땅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땅에 누워 쿨쿨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깨워 다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 모습을 본 예수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홀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큰소리로 제자들을 깨웠다.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느냐? 자, 이제 일어나거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목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나 몽롱한 정신 때문에 예수님의 말이 쉽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단의 무리가 시선에 들어왔다.

수십명이 되는 장정들이 횃불을 들고 예수님의 일행을 막아 섰다. 그들은 대사제와 유다인들이 보낸 예수님의 체포조였다.

그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채 예수님의 일행을 덮쳤다. 순식간에 제자들과 무리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자들은 수도 열세인데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라 제대로 싸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은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그 위로 칼과 몽둥이가 날아왔다. 제자들은 목숨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다 잡아와라.”

그러나 제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예수님만 덩그러니 무리들 중에 홀로 남게 되었다. 몇명이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예수님의 팔을 잡아챘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밧줄로 묶은 채 대사제의 집으로 압송했다.

도망친 제자 중 하나가 멀리서 숨어 지켜보다가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야, 여기 한 놈이 있다. 저 놈을 어서 붙잡아라!”

그 제자는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붙들자 황급한 나머지 겉옷인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줄행랑을 쳤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깔깔대며 비웃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너무 부끄러웠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너무 비굴하고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공포 중에서 죽음의 공포만큼 더 큰 것은 없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아주 미약한 존재가 된다. 예수님의 체포 과정에서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자신들의 인간적인 한계성을 철저히 체험했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순간에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피했고 스승을 배반했다. 제자들은 두고두고 자신들의 비굴한 행동 때문에 스스로 자책을 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서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제자들을 따듯하게 위로해주시고 평화를 빌어주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은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도 고통과 수난에 직면했을 때 맞서기보다는 쏜살같이 도망치기 바쁘다.

그러나 그처럼 약하고 무력한 존재이기에 더욱 더 회개가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무력함과 용기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늘 도망친 우리들이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