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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4) 1949년 ‘대한 천주교 총연맹 결성’

by 세포네 200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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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구대표자 七十여명 회동
최고 최대의 단체 결성…”

“大韓天主敎總聯盟結成
서울교구 연합청년회의 주최로 八월 二十二일부터 동 二十六일까지 가톨릭 하기대학강좌를 열었고 이를 기회로 하여 동 二十六일 오후 二시에 서울 명동대강당에서 천주교총연맹을 조직하였다. 서울교구를 비롯하야 각교구대표자 七十여명이 회동하야 전국적 최고 최대의 단체 대한천주교총연맹을 결성하게 된데 대하여서는 총재 노주교각하의 열열하신 지도와 서울교구 유지제씨의 분투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연맹의 탄생을 축복하며 그의 발전을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이었다. 한국교회는 해방의 기쁨을 민족과 함께 나누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민족의 해방을 주보인 성모님의 선물로 여겼으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각종 축하와 기념미사를 통해 그 기쁨을 나눴다. 해방과 함께 교회에서는 일제말에 휴간된 경향잡지, 경향신문, 가톨릭청년 등이 속간됐고 ‘천주교회보’도 1949년 4월 1일을 기해 다시 발간되기 시작했다.

남한 교회는 이제 해방된 민족에 대한 봉사를 다짐하면서 복음전파 뿐만 아니라 교육운동, 사회사업 등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통한 간접 선교에 노력했다. 교회의 사회 참여,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교회내 청년운동과 가톨릭 액션에 큰 자극이 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바탕으로 해서 1949년 8월 26일에는 ‘대한천주교총연맹’이 결성됐던 것이다.

‘천주교회보’는 9월 1일자 사설을 통해 대한천주교총연맹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교회내 모든 활동을 총망라하는 연맹의 발전을 기원한다. 사설과 회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대한천주교총연맹은 한국교회의 다양한 가톨릭운동을 교회와 사회 안에서 직접 실천하는 손발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연맹의 결성에 앞서서, 1949년 봄에는 주교회의에서 각 교구장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최고기관인 중앙위원회”가 탄생되어 “가톨릭운동을 지도하는 대방침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방침을 실천하는데에는 ‘행동체’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그 수족이 될만한 강력하고 또 신자들의 총역량을 집결”할 단체를 구상, 이러한 단체로서 대한천주교총연맹이 결성되게 된 것이다.

대한천주교총연맹은 따라서 산발적으로 추진되어왔던 가톨릭 운동을 통합해 본격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결성된 한국 가톨릭 평신도 운동의 중앙 추진 단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각 청년단체들도 가톨릭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전국가톨릭청년연합회’결성을 촉구했다.

그 필요성과 흐름이 수용돼 대한 천주교 연맹이 결성됐는데 이 연맹은 대내적으로는 단결을 강화함으로써 운동의 통일성을 기하고 대외적으로는 입법, 행정, 교육, 산업, 문화 등 각 방면에 가톨릭 정신을 보급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한국 가톨릭 운동을 대표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회보는 이어진 사설에서 연맹이 형식적이지 않고 모든 신자들이 뜻과 힘을 모아 가톨릭 운동을 전개하자고 촉구한다.

“대한천주교총연맹은 방대한 조직체이다. 개인과 단체를 막논하고 모든 것이 그 산하에서 그 지시를 받어야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체이다. 가톨릭운동은 가톨릭정신의 현양이 그 목적인만큼 모든 불순과 허위를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가 히구하는바는 연맹의 조직이 형식에만 그치지말고 실질적으로 三十만 신도의 총결합이 되어 진실한 의미의 가톨릭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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