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

성서의 인물을 마치며…

by 세포네 2006. 4. 24.

처음에 성서의 인물의 집필을 시작하면서 신문사측에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부님! 성서의 인물을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쓰지 마시고 가능하면 상상력을 동원해 주세요. 무엇보다 쉽고 편안하게 써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해할 정도로….”

그러나 글을 써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쉽게 글을 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만약 글을 쓰는 것이 마치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쉬는 것처럼 편안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성찰과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삶의 작업일 것이다.

그래서 글은 곧 삶의 일부분이다. 때로는 글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내심이 상처받기 싫은 인간의 방어적 행동이라 생각되는 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인간의 생각이 어떤 단어와 만나 생명력이 불어넣어질 때 그건 창조의 작업이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창조 작업은 글을 쓰는 것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것에 조금 거창한(?) 의미를 붙여 보았다.

만 2년 동안 매 주일 성서 속의 인물을 그려내는 작업은 나에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성서 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건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돌아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분명히 과거의 역사 속에, 그리고 성서 속에 실존했던 인물을 오늘의 시간에 다시 만나는 것은 분명히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성서의 인물들은 모두 한결같이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성서의 인물들의 여행은 나에겐 그야말로 은총의 시간이 되었다. 성서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때로는 오랜 시간을 묵상하면서 성서의 인물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가지가지 생각과 상상을 통해 만난 성서의 인물들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이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같았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때로는 죄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락없는 한 인간이었다.

훌륭한 인물들이 죄와 어둠의 구석을 지니고 있다는 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길을 나서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인간의 모습이 바로 성서의 인물이었다.

성서의 인물들을 그리면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인지를 새삼 다시 느꼈다.

모든 만남은 은총이다. 그 만남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분명 은총이다. 과거는 그저 시간 속에서 흘러 지난 간 것이 아니다.  성서의 인물들의 삶도, 나와 내 부모 형제들의 삶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삶은 신비롭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성서의 인물들의 삶과 역사에는 분명한 것이 한가지 있다. 그건 모든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놓지 않은 마지막 희망의 끈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성서의 인물들은 모두 위대하고 거룩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의 인물들은 힘겨운 길을 가고있는 우리에게 늘 희망과 위로를 선사해주고 있다.

먼저 성서의 인물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능력으로 더 좋은 글을 쓰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시 한번 직접 전화나 메일, 그리고 편지를 통해서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해외에 살고 계신 동포 여러분들의 격려 편지를 받았던 기억에 다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