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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115

[주교좌성당] 제주 중앙성당 ◀ 1. 제주시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제주교구 중앙 주교좌성당의 우뚝 솟은 종탑이 제주 선교 100여년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2. 중앙성당은 주교좌 성당답게 1700석의 여유로운 좌석과 높은 천장, 양측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늑함을 더해주고 있다. 제주시 삼도2동 도심 한가운데 빌딩들 사이로 높이 솟은 십자가탑이 눈길을 끄는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종탑은 전국 14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게 개신교보다 가톨릭 신자가 더 많다는 제주도의 가톨릭 신앙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80년 된 느티나무 가지가 만들어 내는 넉넉한 그늘과 그늘 아래 벤치가 찾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게다가 성당을 지으면서 ‘열린 교회’를 지향해 주변의 모든 울.. 2005. 6. 2.
[주교좌성당] 안동 목성동본당 ◀1. 지난 7월 신축을 위해 성당을 허물기 전 목성동 주교좌 성당의 전경 (위) 2. 신축 중인 안동교구 목성동 주교좌성당 조감도. (아래) 안동 지역 최초의 본당인 ‘안동본당’으로 출발, 현재 안동교구의 주교좌 본당이 된 ‘목성동성당’(경북 안동시 목성동 산 1번지 소재). 지난 1927년 본당으로 설립돼 75년의 세월을 안동 지역민과 함께 한 성당이다. 하지만 여느 성당과 달리 목성동성당은 큰 아픔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두 차례의 화재로 성당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안동지역에 신앙이 전파된 것은 지난 1800년대 초. 신해박해(1791년)와 신유박해(1801년)를 피해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신자들이 경상도 일대로 몰려 들면서부터다. 하지만 1815년 을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가 잇달아 경상도.. 2005. 6. 2.
[주교좌성당] 춘천 죽림동성당 예술미 빼어난 가톨릭 미술의 '보고'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에는 차이가 있다. 예쁜 것은 화려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없고, 눈에 스치는 그 순간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넉넉함과 부드러움이 묻어나고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춘천시내 약사리 고개에 자리잡은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그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다.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도 성당 구내를 한바퀴 돌아보면 “참 아름답다”는 탄성을 몇 번은 지를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손길이 닿은 작품일까…. 죽림동성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1998년 9월에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교구장 장익 주교와 한국 가톨릭 미술계의 내로라 하는 예술가 20여명이 문부터 시작해 종탑·성물·유리화·제대까지 구석구석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었다. 이.. 2005. 6. 2.
[주교좌성당] 원주교구 원동성당 작지만 차돌같이 단단한 '신앙의 주춧돌' 강원도 원주시 원동 언덕에 자리잡은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園洞)성당. 언뜻 보면 그다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성당일 뿐이지만 지난 100여년간 강원도 지역 선교의 요람으로, 특히 70년대는 반독재 투쟁의 불씨를 지피며 민주화 운동의 기수가 되기를 자처했던 원동성당이 한국 교회사에 써온 이력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작지만 차돌같이 단단한 원동성당은 규모가 아닌 내실로 따지자면 어느 교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원주교구와 닮은 꼴이다. 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본당이 주교좌본당으로 지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원동주교좌본당은 1888년에 설립된 강원도 최초의 본당인 풍수원본당과 부엉골본당에 이어 1896년에 설립된 세번째 본당이다. 그러나 1896년 부엉골본당.. 2005. 6. 2.
[주교좌성당] 대구교구 계산동성당 116년을 이어온 달구벌 신앙의 '요람'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대구대교구의 주교좌 계산동성당. 지난 1886년 대구 경북 지역의 최초의 본당(당시 대구본당)으로 첫발을 내딛고 1911년 조선교구에서 대구대목구가 분리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된 계산동성당은 그간 달구벌 신앙의 요람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계산동 주교좌성당의 전신인 대구본당이 처음부터 계산동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183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모여 살던 경북 칠곡군의 신나무골. 1886년 당시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대구본당이 설립된 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로베르 신부(한국명 김보록, 재임 1886∼1919)가 아직 박해의 여파가 남은 대구 읍내에서는 선교활동이 어렵다고 판단, 신나무골에 본당.. 2005. 6. 2.
[주교좌성당] 인천교구 답동성당 상항도 제물포에 우뚝 선 '신앙의 요람' 1883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할 당시 인구 100여명에 불과했던 작은 어촌 제물포(인천의 옛 지명)가 지금의 거대한 도시 인천으로 성장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인천의 한복판 중구 답동 언덕에 우뚝 솟은 인천교구 답동(畓洞)주교좌 성당. 인천 앞바다를 고즈넉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답동성당은 인천 시민들과 온갖 풍상을 함께 겪으며 동고동락해온 인천의 산 증인이다. 19세기말 제물포에 성당이 건립된 것은 이곳이 서울의 관문이고 또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눈 여겨 본 당시 조선교구장 블랑(1884∼90년 재임,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지에서의 토지.. 2005. 6. 2.
[주교좌성당] 서울교구 명동성당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의 심장 주교좌(主敎座)의 협소한 의미는 ‘주교가 앉아 교회의식을 행하는 의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교회가 발전하고, 또 세상 한가운데로 나오면서 주교좌성당은 지역교구의 역사와 문화를 응축한 곳이요, 지역사회와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터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교구의 주교좌성당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주교좌성당을 설립연대 순으로 주교좌성당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건축사, 문화예술적 가치 등에 이르기까지 주교좌성당의 모든 것을 2002년 5월 19일부터 평화신문에 연재 했던 내용을 하나하나 올려봅니다. ‘한국교회 1번지’ 명동대성당.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1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 자체가 우리들에.. 200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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