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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성당

[주교좌성당] 제주 중앙성당

by 세포네 200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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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시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제주교구 중앙 주교좌성당의 우뚝 솟은 종탑이 제주 선교 100여년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2. 중앙성당은 주교좌 성당답게 1700석의 여유로운 좌석과 높은 천장, 양측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늑함을 더해주고 있다. 

 

 

제주시 삼도2동 도심 한가운데 빌딩들 사이로 높이 솟은 십자가탑이 눈길을 끄는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종탑은 전국 14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게 개신교보다 가톨릭 신자가 더 많다는 제주도의 가톨릭 신앙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80년 된 느티나무 가지가 만들어 내는 넉넉한 그늘과 그늘 아래 벤치가 찾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게다가 성당을 지으면서 ‘열린 교회’를 지향해 주변의 모든 울타리를 제거한 탓인지 성전 앞 마당은 신자들 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다.

이처럼 넉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성전을 올려다보면 우뚝 솟은 3개의 십자가탑이 시선을 끈다. 성전 전면으로 라틴 십자가(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고 곧게 뻗어 있는 모양) 형상의 이 탑은 가톨릭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와 제주도의 특징인 삼다(三多·여자, 바람, 돌이 많음)와 삼무(三無·도둑, 거지, 대문이 없음)를 상징화한 것.

시계와 장미창이 보이는 53m 높이의 고딕식 중심탑 좌우의 양쪽 탑 하단에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예수 성심의 전신상이 서 있고 그 좌우 뒤쪽 벽에는 이 두 상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에 반사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로마네스크풍 고딕 성당 특유의 엄숙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좌우로 좁은 측랑을 이루고 있는 기둥들 외에는 별다른 기둥이 없어 기둥들로 인해 막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1700석의 좌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다 비교적 밝은 색조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햇살과 제대를 향해 완만하게 아래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구도가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아늑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성전 제대 뒤로는 중앙의 십자가와 좌우 모서리의 성모상과 예수상이 밖에서 바라본 성당 입구 정면의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벽면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신자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어우러져 은은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내고 있다.

1899년 제주교구 최초의 본당이 있었던 그 자리에 위치해 있는 중앙성당은 주교좌 성당으로서는 네번째로 신축된 성당이다. 제주 선교 100주년(1999년) 기념 사업으로 지난 1997년 세번째 성당을 허물고 착공해 1999년에 완공했으며, 2000년 7월 당시 교구장 김창렬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많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주교좌 본당의 두번째 성전으로 당시 제주도에서 유일한 서양식 고딕 건물이었던 1930년대의 ‘뾰족당’이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100주년 기념 성전은 바로 이 뾰족당을 원형으로 삼았는데 성전을 건축하면서 본당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자 ‘뾰족당’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은 물론 타종교인들까지도 성금을 보내오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낮 12시. 삼종을 알리는 중앙 성당의 종소리가 제주시 삼도2동 도심에 울려 퍼진다. 은은히 귓가를 맴도는 종소리는 신자들 뿐 아니라 제주 시민들까지도 향수에 젖게 한다.

이 종소리에는 사연이 있다. 중앙본당의 두번째 성당으로 1930년대에 지은 옛 고딕식 성당에 설치됐던 종이 지난 2000년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면서 되돌아온 것. 성전을 설계한 건축가 김창우(요셉)씨도 “유아세례를 받고 자란 저 역시 예전의 종탑과 종소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신자들 뿐 아니라 일반 제주도 도민들에게 우리 성당의 종소리는 아득한 추억과 같다”고 말했다.

현재 중앙 주교좌성당은 본당의 두번째 성전이었던 1930년 축복식을 가진 고딕식 적벽돌조 성당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것. 두번째 성전은 최덕홍 신부(재임 1929~1936)가 건평 90평 규모로 건립한 고딕식 성전이었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1930년 전반기까지 최 신부가 약 5000원의 건립기금을 모아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사제가 주도적으로 기금을 모으고 여기에 신자들이 기금을 보태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신자들 중에는 밭을 팔아 마련한 기금을 봉헌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딕식 첨탑이 인상적이어서 ‘뾰족성당’이라는 별칭을 얻은 두번째 성전은 당시 제주도의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었다. 게다가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도 유명해서 당시 제주민들에게는 시계 역할까지도 하는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첫 성당은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본당(현 중앙 주교좌본당)이 설정되던 1899년 초대 주임 페네 신부와 보좌 김원영 신부가 매입한 한옥집이 첫 성당이었다.

세 칸이 마루로 이루어져 있는 네 칸짜리 사랑채와 문간방 그리고 사랑채 맞은 편에 다른 두 동의 건물이 딸린 성당은 당시 제주도에서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한옥을 매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외국인에게 집을 팔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계약을 파기 당하기까지 한 페네 신부는 결국 다른 사람을 내세워 집을 매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1930년대에 고딕식 성전을 지은 제주본당은 1960년대 후반 신자 수가 2000여명으로 늘어나자 마침내 1969년 고딕식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주교관(主敎冠) 모양의 현대식 성전을 새로 지었다. 건립비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본부의 지원금과 당시 주임이었던 세비지 신부(재임 1966~1969)의 사재로 충당했다.

이처럼 주교좌본당은 약 100년에 걸쳐 세 성전을 마련하는 데 모두 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교좌본당은 1997년 네번째이자 현재의 성전을 신축하면서는 ‘우리 힘으로 하자’는 원칙 아래 성전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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