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미 빼어난 가톨릭 미술의 '보고'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에는 차이가 있다. 예쁜 것은 화려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없고, 눈에 스치는 그 순간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넉넉함과 부드러움이 묻어나고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춘천시내 약사리 고개에 자리잡은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그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이다.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도 성당 구내를 한바퀴 돌아보면 “참 아름답다”는 탄성을 몇 번은 지를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손길이 닿은 작품일까….
죽림동성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1998년 9월에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교구장 장익 주교와 한국 가톨릭 미술계의 내로라 하는 예술가 20여명이 문부터 시작해 종탑·성물·유리화·제대까지 구석구석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었다.
이 정도면 한국 현대 가톨릭미술의 보고(寶庫)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다.
죽림동성당은 건축 예술미와 교구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성당 입구에서 보이는 종탑 위의 십자가와 청동 정문만 세심하게 보아도 교구의 63년 역사를 대략 눈짐작할 수 있다.
파란 하늘로 솟아있는 십자가는 명동대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이 생겼다. 1939년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돼 지목구(知牧區)로 출발한 교구임을 상징하기 위해 명동대성당의 것을 그대로 본 따 설치한 것이다.
청동 문의 위쪽에는 아일랜드풍의 옛 십자문양 한 쌍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척박한 강원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6.25 전쟁 전후의 궁핍한 시기에 주교좌성당을 건축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그 아래 부조는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안고 생명의 땅 이집트로 가는 장면(마태 2, 13-15)과 예수가 제자들에게 진복팔단(산상수훈)을 가르치는 장면(마태 5, 1-12)을 형상화한 것으로 하느님 백성이 무엇에 의지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문 오른쪽으로는 최종태 교수의 작품 ‘예수성심상’이 교구의 요람인 약사리 고개를 한없이 자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수성심은 춘천교구와 죽림동 주교좌본당의 주보이다.
건너편 왼쪽에서는 성모자상이 성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이들을 반긴다. 이 작품은 1970년 고 이세중 선생이 백시멘트로 제작해 기증한 것이 풍상에 깎여 나가자 조각가 이춘만씨가 화강암으로 원작을 살려 다시 세운 것이다.
파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을 따라 성당 뒤쪽으로 가면 성직자 묘역이 나온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평일 오후, 허리가 구부정한 80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교구 사제들의 영혼을 위해 홀로 연도를 바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할머니의 고령 때문인 지, 아니면 온 정성을 다해 기도를 바치는 경건한 표정 때문인 지 산 이와 죽은 이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덤 뒤에 세워놓은 5m 높이의 나무 십자가가 유독 눈길을 끈다. 이 나무 십자가는 춘천교구가 2000년 대희년 6월25일 철원군 월정리역 분단의 현장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를 열 때 제단에 설치한 것이다.
동해안 지역에 산불이 났을 때 타버린 소나무와 북한에서 들여온 주목나무로 엮어 만든 ‘사연 많은’ 십자가다. 분단 교구인 춘천교구의 현실과 교구민의 통일 염원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의식하지 않는데도 시선이 자연스레 성당의 중심인 제대 쪽으로 쏠린다. 도금 동판의 감심, 화강암 제대와 독경대, 주례석, 촛대 등이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정돈돼 있어서 시선을 모아주는 것 같다.
이 성물들은 모두 가톨릭 미술가들의 손을 거친 작품인데다 교회미술과 전례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장익 주교가 직접 배치한 것이다. 요즘 성당을 신축하는 여러 본당의 신부와 사목위원들은 이 주교좌 성당에 들러 전례공간 구성을 한 수씩 배워간다.
이정행 주임신부는 “죽림동성당은 교구설정 60주년을 기념해 벌인 중창(重創)사업 덕분에 전례적, 예술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하느님의 집으로 탈바꿈했다”며 “지금은 주교좌성당에 걸 맞게 공동체의 내실을 다지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구석구석을 고치고 정리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웃었다.
그러나 죽림동성당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강원도 신앙전래의 흔적과 전통을 고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1. ‘전례공간 구성의 교과서’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죽림동성당 제대 전경.
2.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가들이 예술적 혼을 불어넣어 재탄생시킨 죽림동 주교좌성당. 석벽의 고풍스런 멋과 현대미술의 세련미가 공존한다.
3. 한 할머니가 성당 뒤편에 있는 교구 성직자 묘역에서 홀로 기도를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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