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을 이어온 달구벌 신앙의 '요람'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대구대교구의 주교좌 계산동성당. 지난 1886년 대구 경북 지역의 최초의 본당(당시 대구본당)으로 첫발을 내딛고 1911년 조선교구에서 대구대목구가 분리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된 계산동성당은 그간 달구벌 신앙의 요람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계산동 주교좌성당의 전신인 대구본당이 처음부터 계산동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183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모여 살던 경북 칠곡군의 신나무골. 1886년 당시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대구본당이 설립된 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로베르 신부(한국명 김보록, 재임 1886∼1919)가 아직 박해의 여파가 남은 대구 읍내에서는 선교활동이 어렵다고 판단, 신나무골에 본당 거처를 임시로 잡았던 것이다.
그 후 본당은 대구 지방관리와 불량배들의 박해와 음모 등에 휩싸이면서 1888년과 1891년 두 차례에 걸쳐 새방골(현 대구 상리동 일대), 대어벌(원대동 일대)로 거처를 옮기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897년 현재의 위치인 대구 계산동에 부지를 마련, 한국식 팔각 기와 지붕을 이은 목조 십자형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한다.
2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1899년 루르드의 성모를 본당 주보로 모신 가운데 축성식을 거행한 로베르 신부는 당시 감격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대구에서 이런 축제를 한번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01년 발생한 지진으로 제대 위의 촛대가 넘어지는 바람에 성당은 불길에 휩싸여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다시 1년간의 공사 끝에 1902년 세운 성전이 영남 최초의 서구식 성당인 오늘날의 계산동성당이다.
설계를 맡은 로베르 신부는 신축을 위해 전주 전동성당의 설계도를 입수하고, 색유리와 철물 등 공사 자재는 프랑스와 홍콩 등지에 주문한 뒤 서울 명동성당을 건축했던 벽돌공, 석공, 목수 등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공사를 진척시켰다.
그 후 1912년과 1913년 두 차례에 걸쳐 성당 내부에 주교 강론대와 제단을 만드는 공사를 했고, 교우수가 늘어남에 따라 1918년 기존 종탑을 2배로 높이고, 성전의 동남북 3면을 증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종탑에는 두 개의 종이 있는데, 이를 헌납한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 서상돈(아우구스티노)과 김 젤마나의 세례명을 빌려 지금까지 ‘아우구스티노’와 ‘젤마나’로 불리고 있다.
계산동성당은 건축적으로 고딕식 벽돌조 건물이다. 평면은 라틴 십자형이고 서쪽 정문에 세운 2개의 종탑부에는 8각형의 높은 첨탑을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 모양의 창문으로 장식돼 있다.
근대 초기 성당은 대개 박해시대의 순교지나 높은 지대에 위치해 마을이나 전 시가지를 내려다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계산동성당은 이와 달리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처음 성당 부지 물망에 올랐던 자리는 현재의 동산동 일대였는데, 황무지인 허허벌판 언덕에 성당 자리를 잡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논란을 거듭하다가 대구 읍내 평지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지난 1981년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된 계산동성당은 1991년 성당 건립 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벽돌로 이뤄진 성당 외벽은 물론 성당 내부 바닥의 부식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성당 설립 당시 흙 모래 석회를 섞어 깔아놓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 미사를 보는 신자들을 고려해 바닥 위에 마루를 깔았으나 마루 밑의 환기 공간 부족으로 부식이 심화됐고, 이를 막기 위해 설치한 비닐 장판마저 썩어 들어가자 보수를 단행, 바닥 원형은 보존한 채 대리석을 대신 깔았다.
또 세파에 시달려 상한 벽돌을 빼내고 대구 남산동에 있는 옛 유스티노 신학교 건물 보수 현장에서 나온 벽돌을 가져와 복원했다. 1914년 세워진 유스티노 신학교 건축 당시 벽돌이 계산동 성당 벽돌과 가장 흡사했기 때문이다.
1886년 본당 설립 이후 116년간 달구벌의 신앙 터전이 된 계산동 성당. 새빨갛던 벽돌이 비바람에 씻겨 주홍빛으로 바랬지만 웅장함은 그대로 간직한 채 흔들림 없이 건재한 모습을 간직하면서 아직도 교구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1981년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사적 제290호로 지정된 계산동 주교좌 성당. 1902년 영남 최초의 서구식 건물로 지어져 100년의 긴 세월을 함께 한 계산동성당은 교회의 다양한 문화 유산을 갖고 있다.
소중한 보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일까. 신자 8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건평 300여평의 웅장한 외형과 달리 성당 내부에는 관심 어린 눈길을 보내지 않고는 지나치기 쉬운 아름다운 교회 유산이 여기 저기 숨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제대 뒤편을 장식하고 있는 다섯 개의 아치형 창문. 건축적 아름다움도 특출하지만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모상은 성당 역사를 말해주는 유산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대 중앙 뒤편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것이 통례이지만 계산동성당은 다섯 개의 창문 중 가장 작은 가운데 창문 중앙에 루르드의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이는 1899년 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한국식 팔각 기와 지붕을 이은 목조 십자형으로 계산동성당을 지을 때 본당 주보로 루르드 성모를 모신 역사적 사실을 상징한다. 이 성당은 불행하게도 1901년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지만 본당 주보 성인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제대 뒤편 중앙 창문에 루르드의 성모상을 모신 것이다.
또 성모상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1902년 성당이 지어질 당시 프랑스에서 제작해 설치된 것으로 100년 동안 오색 찬연한 빛을 여전히 발하고 있다. 제대 양쪽 측면에 공관복음을 상징하는 네 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당 정문 상단을 장식하고 있는 장미 문양의 대형 창문도 성당 건립 당시 그대로다.
제대 양측 네 개의 창문 옆에 세워져 있는 성녀 소화 데레사·성 안토니오·예수성심·성 요셉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100년을 신자들과 함께 했다.
아울러 고딕식 벽돌조 건물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간에는 여느 성당에서 보기 힘든 둥근 모양의 붉은 십자가 패 12개(12사도를 상징)가 박혀 있는데 이것도 100살이 되었다. 이 십자가 패는 성당 축성식 때 크리스마 성유를 발랐던 것인데 오랜 보존을 위해 패 뒤에 벽돌을 붙여 기둥의 벽돌과 벽돌 사이에 끼워넣는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성당 설립 당시 사용되던 제대는 1913년 제단 증축 공사를 하면서 걷어내 현재 관덕정 순교자기념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1913년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까지 사용되던 제대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나무 제대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 벽을 향해 있던 공의회 이전 모습 그대로이며 제대 하단부 중앙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팔)가 안치되어 있다.
신자석 양 옆의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도 199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는 단순한 색 유리만으로 이뤄진 창이었으나 교구 제2주보 성인인 이윤일 요한을 비롯한 10명의 한국 성인상을 덧붙였다.
성당 안에 머물렀던 시선을 돌려 성당 밖 마당을 둘러보아도 유서 깊은 유물이 많다. 성당 정문 앞 마당 한가운데 있는 대형 십자가는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 주교(재임 1911∼1938)가 교구장 부임 25돌을 기념해 세워진 것이다. 교구장 부임 25돌은 곧 교구 설정 25돌이자 계산동성당이 주교좌가 된 지 스물 다섯 해 되는 해였다.
또 계산동본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은 지난 1986년 성당 마당 한 켠에 자그마한 공원을 조성하면서 계산동성당을 지은 초대 주임 로베르(김보록) 신부의 동상을 세웠다. 한국식 목조 성당을 건립했지만 3년 만에 예기치 않은 화재로 성당을 잃고도 좌절하지 않은 채 다시 오늘날의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대구 경북 지역 복음화에 헌신한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1886년 대구 경북 지역 최초의 본당으로 첫 발을 내디딘 지 116년, 1902년 영남 최초의 서구식 성당의 모습을 갖춘 데 이어 1911년 주교좌 성당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지 100년. 긴 세월만큼 많은 유산을 간직한 계산동성당은 지금도 하나씩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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