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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80

(44) 분단 후 처음 북한 땅에서 미사 “분단 후 40년만에 북한서 미사 봉헌” “북한 땅서 40年만에 공식 미사 - 池主敎 집전 한국 성인 대축일 미사 봉헌 분단 40년만에 종교가 말살된 북녘땅 공산치하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미사성제가 봉헌됐다. 남북한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집전으로 봉헌된 북녘땅에서의 미사는 평양 방문 3일째이자 한국순교성인대축일 주일인 지난 9월 22일 오전 7시 20분경 숙소인 고려호텔 3층 제1영화관에서 봉헌했다. 분단 40년만에 남한의 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미사를 집전한 지학순 주교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 ‘1945년 해방 직후 모든 성직자들이 순교하여 40년간 미사성제가 없었던 평양에서 역사적인 미사를 집전하게 돼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면서 ‘1백3위 한국.. 2007. 7. 8.
(43)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 납치 “ 문정현 신부 정부 기관원에 강제 피납” “전주교구 문정현 神父 피납 15시간 5.18을 하루 앞둔 15일 오전 9시 30분경부터 16일 새벽 1시까지의 15시간 불법 강제 피납에 항의, 단식에 들어갔던 전주교구 장계본당 주임 문정현 신부가 단식 7일째인 21일 오후 4시 30분 당국이 정식 사과함으로써 단식을 풀었다. 이와 함께 20일부터 가톨릭센타에서 집단단식 농성 중이던 일부 성직자 및 평신도 40명도 ‘사과’를 듣고 해산했다. 15일 오전 9시 30분경 문신부를 강제 납치, 88고속도로를 거쳐 동해안 고속화도로를 경유, 경북 백암온천 입구까지 연행했다가 16일 새벽 1시경 장계성당에 돌려보낸 기관원들은 문정현신부의 단식을 필두로 교구정의평화위원회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항의가 강력해지자 21일 오.. 2007. 6. 24.
(42) ‘한국가톨릭대사전’ 간행 “한국 가톨릭교회와 문화 종합 정리”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가 지난 80년부터 기획, 만 5년여의 각고 끝에 간행된 ‘한국 가톨릭대사전’은 2백년 한국천주교 문화를 집대성하는 획기적인 작업으로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백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2백주년을 마무리하고 복음화 3세기가 시작되는 역사적 시점에서 간행돼 의의가 깊은 ‘한국 가톨릭대사전’은 한국 가톨릭교회와 문화 전반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가톨릭교회에 대한 바른 개념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교회를 모르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간단 명료한 해답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가톨릭신문 1985년 2월 24일자 1면 중에서) 한국교회 역량 드러내 한국 천주교 200주년 .. 2007. 6. 17.
(41)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 한국교회 사상 첫 전국 사목회의 개최 “福音化 3세기의 座標 설정 - 4년 각고 끝에 의견 집약 - 12個 案 최종 확정 통과 복음화 3세기를 향한 한국 천주교회의 새로운 사목지침이 마련됐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사목회의 위원회는 11월 30일과 12월 1일 서울 가톨릭의대 강당 마리아홀에서 사목회의 총회를 속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의안등 모두 12개 사목회의 의안을 확정, 통과시키고 4년여에 걸쳐 추진되어온 사목회의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개최한다는 점에서 교회는 물론 교회 밖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목회의 의안들은 각 의제마다 과거 및 현재를 엄격히 분석, 반성하는 것으로 출발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를 개선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하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2007. 6. 10.
(40)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탄생 “죽음으로 지킨 신앙, 세계 교회에 증거” “한국의 순교자 103位를 聖人 명부에 올리노니, 世界 敎會가 공경키를 명하노라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신부와 바오로 정하상 외 101명의 한국 순교자를 성인으로 판정하고 결정하여 성인들 명부에 올리노라.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을 선언함으로써 한국순교복자 103인은 드디어 성인으로 공식 선포됐다. 103위의 복자들은 자신들이 피흘렸던 이 땅의 절두산과 새남터가 바라다 보이는 여의도에서 성인으로 선포돼 죽음으로 지킨 신앙의 위대함을 온 세계 교회에 증거했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6일자 1면 중에서) 이땅에 빛을 ‘이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이뤄진.. 2007. 5. 27.
(39)북한 동포에 보내는 특별 메시지 “북한 형제들과 손잡고 미사 할 수 있길”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겸 북한선교부 담당 김남수 주교는 6.25를 맞아 북한 동포들에게 전하는 특별 메시지를 발표, ‘북한의 형제들에게 하루속히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도록 또한 우리 모두 서로 손잡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한 우리의 한 양떼가 되어 함께 감사의 미사를 드리게 될 때까지 우리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라도 여러분을 위한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천명했다.”(가톨릭신문 1983년 6월 26일자 1면 중에서) ‘주께서 함께 계시다’ 한국 천주교회가 분단 이후 갈라진 북한 교회를 향한 통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접어들어서였다. 이에 앞서 80년대 초반에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북한 .. 2007. 5. 13.
(38) 한국순교복자 103위 기적심사 관면 “한국 실정 고려해 기적 심사 면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확실시 -시성 추진에 가장 어려운 과정 통과 -아직 시성 확정 안돼 계속 기도 절실 한국 순교자들의 시성시복추진을 관장하고 있는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김남수 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6월 11일 한국순교복자 1백3위의 시성추진에 기적심사관면을 윤허했다고 6월 12일자 공문을 통해 발표했다. 한국주교단은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추진에 있어 가장 어렵고도 중대한 관문인 기적심사 통과를 위해 지난 3월 5일 기적심사관련 청원서를 작성, 전국 주교들의 연서명과 주한 교황대사 프란체스꼬 론떼리시 대주교의 추천서를 첨부, 3월 24일 이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었다.”(가톨릭신문 1983년 6월 19일자 1면 중에서) 사실상.. 2007. 4. 29.
(37)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공동체성 고려, 법 적용 신축성 요구”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주범을 둘러싼 교회법상 비호권과 실정법상의 범인 은닉과의 관계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회 비호권은 교회사적 성격상 모든 질서 파괴자를 보호하는 것이 그 목적은 아니지만 교회법과 일반사회법의 가치질서의 복합성은 존중돼야 하고 또 사회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인간의 공동체성을 침해하게 된다고 경고, 법 운영의 신축성을 요구했다.” (가톨릭신문 1982년 4월 11일자 1면 중에서) “사제 직분으로 도와준 것” 70년대 사회 정의 실현에 눈 뜨고 참으로 민족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던 한국교회는 80년 광주의 비극을 겪으면서 민주화 투쟁의 시대적 징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광주 항쟁을 야기한 정권의 폭압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교회는.. 2007. 4. 22.
(36) 한국교회 최초 해외선교 시작 “세계 선교무대에 감격의 첫 발”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선교사제 4명 파견- 한국외방선교회, 파푸아 뉴기니아로 우리도 외국에 선교사를 파견한다. 한국교회 2백년 역사상 최초로 4명의 사제가 선교를 위해 파푸아 뉴기니아로 파견된다. 너희는 ‘가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복음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외방선교회(총재 김남수 주교)는 설립 8년만에 배출된 첫 사제를 포함 모두 4명의 사제를 타국에 파견함으로써 이땅 이교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설정하는 한편 결코 지워지지 않을 한 획의 굵은 선을 그었다.”(가톨릭신문 1981년 10월 11일자 1면 중에서) 받는 교회서 ‘주는 교회’로 한국교회는 1981년 10월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 신앙대회를 개최함으로.. 2007. 4. 15.
(35)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한국 교회 설립 이래 가장 큰 행사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150여 년 전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터전을 마련하고 독립 교구를 이룩한 목자들과 선조들의 위업을 기리며 그 높은 뜻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신앙대회가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장엄하게 펼쳐졌다.”(가톨릭신문 1981년 10월 25일자 1면 중에서) 신앙의 씨앗이 결실 맺어 광주의 비극을 목격한 그 이듬해인 1981년 10월 18일은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통해 내외에 교회의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여의도에서 장엄하게 거행된 신앙대회에는 80만명의 신자들과 500여명의 사제들이 참석했다. “80만을 헤아리는 신앙의 인파가 .. 2007. 4. 8.
(34) 달레의 ‘韓國 天主敎會史’ 완역, 발간 달레 신부 ‘한국천주교회사’ 번역 발간 “달레 著 ‘한국 천주교회사’가 지난 9월 15일 드디어 완역, 발간되었다. 한국교회사의 대명사처럼 불리어지고 있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완간은 교계와 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요청돼온 것으로 단순한 번역서가 아닌 한국교회사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완간으로 초기 한국교회의 1백년 역사는 이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근세 달레가 취급하지 못한 사를 포함한 한국교회의 통사가 이 시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가톨릭신문 1980년 9월 21일자) 한국교회 역사의 이해 도와 1964년 가톨릭대학교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로 꼽는 것이 달레의 ‘한국 천주.. 2007. 3. 25.
(33) 1980년 광주민주항쟁 발생 “한 핏줄 한 형제, 유혈 충돌 만은 말아야” “지난 5월 23일 광주사태와 관련, CCK 회의실에서 긴급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서한을 통해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같은 땅에서 같은 핏줄의 형제들끼리 피를 흘리는 인간적 충돌은 저지돼야 한다’고 천명, ‘감정적 흥분과 독선적 집념을 벗어버리고 형제적 화해의 기반을 슬기롭게 마련하자’고 촉구했다.”(가톨릭신문 1980년 6월 1일자) 광주 돕기 모금운동 가톨릭신문(1980년 4월 1일부터 ‘가톨릭시보’에서 ‘가톨릭신문’으로 제호 변경)에 처음으로 광주민주항쟁이 비쳐지기 시작한 것은 그해 5월 25일자부터였다. 1면 중앙에 2단 크기로 짤막하게 나온 기사는 다음과 같다. “21일 오후 1시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2007.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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