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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80

(32)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망 “국민 일치 단결 평화 위해 기도하자” “김추기경은 이날 AP 통신과의 회견에서 모든 신자들이 국가와 국민들의 단결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여야당을 막론하고 그리고 모든 정견을 떠나서 서로간의 증오심을 버리고 일치단결하여 중대한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이어 ‘오늘의 사태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문제’라고 강조하고 ‘모든 신자들은 단합과 사랑과 신뢰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가톨릭시보 1979년 11월 4일자 1면 중에서) 교회-정부간 대립 지속돼 70년대, 교회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깊숙이 참여하게 되면서 정부와 교회의 관계는 날로 대립 양상을 보이게 됐다. 교회의 희생도 커졌다.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 2007. 3. 11.
(31) 1976년 103위 한국 순교복자 시성 청원서 교황청 접수 “시성 신청서 교황청에 정식 제출” “諡聖 신청서 聖聽에 正式 접수 한국 103위 복자의 시성 신청서가 지난 10월 15일 교황청 성사, 경신성성에 정식 제출되어 절차를 밟고 있음이 최근 로마에서 한국 순교 복자의 시성을 맡고 있는 이태리인 변호사 율리오 단떼씨가 시성시복추진위 관계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알려졌다. 단떼씨는 지난 8일 시성시복추진위 상임위원인 오기선 신부에게 10월 15일 103위 복자에 대한 시성신청과 4월 한국주교단이 보낸 시성청원서, 최근 서울에서 있은 한 환자의 치유에 관한 사실 기록, 한국의 시성시복추진운동 내용을 묶은 시성신청서를 성사경신성성에 정식 제출했음을 알려왔다.” (가톨릭시보 1976년 12월 19일자 3면 중에서) 교황청도 큰 관심 보여 한국교회 순교 선조 103위의 .. 2007. 3. 4.
(30) 1975년 인성회 설립 “대사회사업 활성화할 인성회 탄생” “까리따스 새 規約 인준 6월 26일 CCK에서 열린 주교회의 임시총회는… 지학순 주교가 작성한 까리따스(仁成會) 명칭 개정안과 규약,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통과 시킨 후 지주교를 ‘인성회’ 총재로 선출하는 등 현안 문제를 의결했다.” (가톨릭시보 1975년 7월 6일자 1면 중에서) 한국 카리타스의 부활 국내외의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을 전국 차원에서 총괄 협의하는 기구로서 한국 카리타스는 1975년 7월 6일 주교회의 총회 의결로 시작된 ‘인성회’로부터 시작됐다. 이 명칭은 그후 1991년 11월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됐다. 가톨릭교회는 본래 그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로서 사회사업을 운영하고 유지해왔다. 한국 .. 2007. 2. 19.
(29) 1975년 한국교회사연구소 독립기관으로 활동 개시 한국교회 최초 교회사 연구소 ‘독립’ “敎會史 연구소 開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가 6월 21일 오후 2시 김추기경을 비롯한 원로 성직자들과 사학계 권위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개소식을 가짐으로써 창립 11년만에 독립된 연구기관으로 재출발을 다짐하게 됐다. 이날 최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연구소가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기관으로 새출발하는 것이 기적처럼 생각된다면서 79위 순교복자 시복 5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장이 교회사연구를 특수사목으로 승격시킨데 의의가 크다고 말하고 학계의 한결같은 격려와 협조와 지도를 부탁했다.” (가톨릭시보 1975년 6월 29일자 3면 중에서) 한국교회사 연구의 주역 한국교회 최초의 교회사 연구기관으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대학교 부설 기관으로 19.. 2007. 2. 11.
(28) 1975년 한국외방선교회 창립 “한국교회 최초로 외방선교회 창설”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성장 “한국 선교회 발족을 결의한다. 단 성청의 인준을 받을 때 시작하고 현 규약은 3년 기한부로 한다. 총재 주교는 최재선 주교를 선정한다.” (가톨릭시보 1975년 3월 9일자 1면 중에서) 아시아 복음화의 희망 한국 교회 초유의 주교 구속 사건과 그에 따라 교회 안팎에서 혼란한 시국이 숨가쁘게 전개되던 70년대 중반,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교회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결정을 주교회의 총회를 통해서 하게 된다. 1975년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전국의 주교들과 교구장 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는 구속됐던 지학순 주교의 석방, 또한 많은 교회 안팎의 인사들이 석방됨에 따라 교회 안에서 이어졌던 많.. 2007. 2. 11.
(27) 1976년 3.1 명동 사건 “정부 전복 선동 혐의 성직자 3명 구속돼” 1975년 들어서 교회의 정의 구현 운동을 봉쇄하려는 정부의 탄압이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다. 집회를 갖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했고, 주요한 인사들을 격리하고 성직자들을 순화시키라는 긴급 지시들이 관할 경찰서들로 속속 내려왔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러한 정부의 조치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탄압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제단은 기도회는 이 땅에 사회 정의가 구현되고 침해받는 인간의 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서 교회 본연의 사업을 실천하는 종교행사이며 … 신앙 행위를 문제성 있는 집회라 하여 봉쇄하려 함은 하느님의 뜻과 양심의 소리를 두려워하는 당국의 도덕적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직접적인 종교 탄압을 다.. 2007. 2. 11.
(26) 1974년 한국 가톨릭 신자수 100만 돌파 “시대 요청 읽으며 교세 빠르게 성장” “韓國 가톨릭 總信者 1百萬 突破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74年度 한국 敎勢 통계 發表 - 6.12%의 增加率 보여, 한해 동안 5萬 8千餘名 증가 - 전체 인구의 3.1%인 1백1만2천2백9명 1974년 12월 31일 현재 한국 가톨릭 총신자수는 드디어 1백만을 돌파한 1백1만2천2백9명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가 집계, 발표한 ‘74년도 한국 천주교회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남자가 42만 719명, 여자가 56만 4천6백55명, 교적 미정리자 5천 3명, 군인 영세자 2천1백30명으로 73년에 비해 5만8천4백10명의 신자가 늘어 지난 한 해 동안 6.12%의 신자 증가율을 보였으며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3.1%로 불어났다.” (가톨릭시.. 2007. 1. 21.
(25) 1974년 정의구현사제단의 결성 “사회 정의 구현할 전국 사제단 출범” “인간 기본권 회복 염원 -서울 기도회, 지주교 옥중 메시지 공표 조국과 정의와 민주회복, 옥중의 지주교와 고통 받는 모든 이를 위한 기도회가 11일 오후 7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2백여명의 신부들과 5백여명의 수도자를 비롯, 1천5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여한 이날 기도회는 예기치 못했던 지학순 주교의 옥중 메시지 공표와 ‘정의구현사제단’의 결의문 발표로 그 절정에 달했다.” (가톨릭시보 1974년 9월 22일자 1면 중에서) 한국사회 민주 운동 주도 1974년 7월 6일 정부 당국에 의해 끌려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사건은 한국교회 초유의 사태로서 박해 시대 이래 유래가 없는 정부의 폭압적 행위였다. 이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는 지주교 체포에 항의하고 정의.. 2006. 12. 17.
(24) 1974년 지학순 주교 체포 “원주 지학순 주교 징역 15년 선고” “池學淳 주교에 懲役 15년 宣告 - 비상군법회의 제3심판부, 자격정지 15년도 倂科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12일 내란선동 및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피의사건 선고 공판에서 비상보통군법회의 제3심판부로부터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보도된 판결문 내용을 요약하면 ‘피고인 등은 유신체제에 불만을 품고 유신체제를 부정, 학생들의 현실참여를 명분으로 한 학원소요를 이용해 현정부의 타도를 획책해오던 자들로서 민청학련에 주도된 국가변란기도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도 당연히 할 일을 다한 양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돼있다.”(가톨릭시보 1974년 8월 18일자 1면 중에서) 한국 천주교의 민주화 물결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 2006. 12. 10.
(23)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도덕적 피폐 가져올 모자보건법 반대” “母子保健法을 反對 -1월 30일 非常國務會議 통과, 遺傳 등 이유로 不姙强要될 수도 [서울]합법적인 낙태 수술의 범위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강제 불임 수술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모자보건법이 1월 30일 비상국무회의에서 통과되자 교회 내에선 이 법으로 인해 생겨날 인명경시 풍조와 가치질서의 전도, 도덕적 피폐, 모체의 건강 위험 등 갖가지 부작용을 크게 우려하면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가톨릭시보 1973년 2월 4일자 1면 중에서) ‘죽음의 문화’ 도래시킨 주범 1973년 유신체제 하에서 비상국무회의는 우리 나라 생명 문화의 커다란 퇴락을 가져온 최악의 악법 ‘모자보건법’을 통과시킨다. 이른바 가족계획 사업을 위해 만든 이 법률은 이후 낙태 천국으로 불리며 .. 2006. 11. 26.
(22) 원주교구 부정부패 추방운동 전개 “부정, 불의 규탄해 사회 약자 구해야” “부정부패 규탄 데모 -1천여 원주 신자들 공동미사 후 지주교 선두로 원주교구 남녀 신자 1천여명은 5일 밤 7시30분 원동성당에서 사회의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한 후 시가행진을 벌이려다 급거 출동한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성당에서 농성을 벌인 후 6일 12시 30분 현재까지 계속 성토대회를 열고 있다. 이날 지학순 주교 및 교구 신부들이 집전한 합동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미사 후 부정부패 규탄 궐기대회를 갖고 국회, 정부 및 크리스찬에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한 후 부정부패 규탄 선언문을 채택했다.” (가톨릭시보 1971년 10월 10일자 3면 중에서) 원주문화방송국 부패 사태 1971년 10월 5일부터 연 사흘 동안 벌어진 원주교구의.. 2006. 11. 12.
(21) 평신도 사도직 전국 협의회 창립(1968년 7월 23일) “현대에 적응하려는 한국교회 노력결실” “평신도 사도직 전국 협의회 창립 평신자 사도직 전국 협의회가 23일 오후 5시 대전서 역사적으로 창립됨으로써 한국교회도 현대에 적응하려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할 차비를 또 하나 갖췄다. 공의회가 제시한 ‘하느님 백성’의 교의를 실천에 옮긴 동 기구 창립은 작년 10월 로마에서 개최된 제3차 평신자 세계대회의 결의와 한국 주교단 6월회의 결의에 의해 촉구되어, 주교회의 평신자사도직 문제 총재로 선임된 대전교구장 황민성(베드로) 주교와 세계대회에 참석했던 한국 대표단장 유흥렬(라우렌시오) 박사에 의해 준비되어 이날 그 창립을 보게 됐다.” (가톨릭시보 1968년 7월 28일자 1면 중에서) 전국 평신도 조직 결성 추진 성직자와 수도자와 구별되는 그리스도인들을 통칭하는 .. 2006.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