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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44) 분단 후 처음 북한 땅에서 미사

by 세포네 2007.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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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후 40년만에 북한서 미사 봉헌”

“북한 땅서 40年만에 공식 미사

- 池主敎 집전 한국 성인 대축일 미사 봉헌

분단 40년만에 종교가 말살된 북녘땅 공산치하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미사성제가 봉헌됐다. 남북한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집전으로 봉헌된 북녘땅에서의 미사는 평양 방문 3일째이자 한국순교성인대축일 주일인 지난 9월 22일 오전 7시 20분경 숙소인 고려호텔 3층 제1영화관에서 봉헌했다.

분단 40년만에 남한의 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미사를 집전한 지학순 주교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 ‘1945년 해방 직후 모든 성직자들이 순교하여 40년간 미사성제가 없었던 평양에서 역사적인 미사를 집전하게 돼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면서 ‘1백3위 한국순교성인들과 무수한 한국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1985년 9월 29일자 1면 중에서)

지학순 주교 주례로 미사 봉헌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북한 교회를 향한 통일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1982년 12월 10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북한선교부’를 발족했다. 1984년, 북한선교부는 주교회의 직속기구로 개편되고, 10월 13일 북한선교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에 앞서 6월 23일에는 북한 선교후원회를 창립했다.

이렇게 통일과 민족화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사목적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1985년 9월 22일, 분단 후 40년 만에 북한 땅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남북한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지학순 주교가 9월 22일 오전 7시20분경 고향방문단원 15명이 참례한 가운데 감격적인 미사를 봉헌한 것이다. 특히 지학순 주교는 당시 북한 방문을 통해 누이동생을 상봉하는 기쁨을 누렸다.

당시 고향 방문단에는 지학순 주교와 함께 내무부장관을 지냈던 홍성철,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강성숙 수녀, 가수 하춘화씨 등 총 15명의 신자들이 참여해 한국 순교 성인들의 전구로 조국의 통일과 북녘땅의 복음화를 기원했다.

당시 방문단 가운데 유일한 가톨릭 성직자였던 지학순 주교는 9월 21일 낮 12시 30분 숙소인 고려호텔 면담실에서 누이동생 용화(당시 61세)씨를 비롯해 배우와 조카들을 상봉했다.

한편 가톨릭신문은 9월 29일자 1면에서 북한 땅에서의 첫 미사 소식을 전한데 이어 7면에서는 3박 4일 동안 이뤄진 북한 방문 소식을 화보와 함께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첫 미사를 집전하는 지주교의 감격을 생생하게 전한다.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평양에서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한 지주교는 미사 중 본기도를 바치다가 눈물이 복받쳐 약 2분간 미사가 중단됐다. 이날 미사가 마침 한국 순교성인 대축일 미사인데다가 전날 37년만에 누이 동생을 상봉한 여운 때문인지 지주교가 ‘순교자’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고 더 이상 잇지 못하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어 미사장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후 평양에서는 장충성당이 준공되고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는 10월 30일 장익 신부와 정의철 신부가 교황청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고향방문단의 일원이었던 지주교와 달리 공식적인 교회 대표 자격으로 북한 땅을 밟은 두 신부의 방문은 통일과 민족화해의 여정에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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