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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바오로서간해설82

(38) 사도직을 ‘화해의 직무’로 이해 ▲4, 10·11 :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4, 17 :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 2008. 11. 16.
(8) 에페소서 바오로 사도의 친서 논란…"아닌 듯"에 무게 전반부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교회에 관한 교리 후반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 관련 권고 담아 ▲ 에페소의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는 순례객들과 관광객들. 에페소서는 필리피서와 필레몬서, 콜로새서와 함께 옥중 서간이라고 부릅니다. 감옥에서 쓴 서간이지요. 또 바오로가 직접 썼느냐 하는 친저성에 있어서 콜로새서와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서간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인장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빛의 자녀답게 선과 의로움과 진실의 열매를 맺으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 ◇에페소는 에게해 연안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쪽에 있는 에페소는 기원전 1000년쯤에 세워진 항구도시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재위 기원전.. 2008. 11. 16.
(7) 로마서 로마 방문 계획 번번히 무산되자 편지로 충고 ▲ 이방인의 사도라고 자부하는 바오로는 이방인 세계의 중심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로마에는 이미 신자들의 공동체, 곧 교회가 형성돼 있었다. 사진은 로마성 밖에 있는 성전 바오로 대성전 전경 로마서는 바오로 서간 13편 가운데서 가장 길 뿐 아니라 내용도 풍부하고 바오로 사도의 신학 사상도 가장 짜임새 있게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친서가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서간 7편 가운데서 가장 늦게 쓰여진 것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이 바오로 서간 가운데서 로마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진노 그리고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간은 율법 실천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됨.. 2008. 11. 16.
(6) 필리피서와 필레몬서 필리피 신자들 후의에 감사와 축복 전해 필리피서와 필레몬서는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 교회와 콜로새 공동체의 필레몬에게 각각 보낸 서간으로, 에페소서 및 콜로새서와 함께 옥중서간이라고도 부릅니다. 옥중서간이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필리피서 ◇필리피와 바오로 필리피는 에게해 건너편 그리스 북부 지방인 마케도니아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바오로 사도 당시에는 제국의 수도 로마와 아시아를 잇는 교통 중심지이자 무역 중심지로 아주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왕이 기원전 360년쯤에 건설한 도시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제국이 마케도니아를 점령한 후 기원 전 31년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퇴역 군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 2008. 11. 16.
(5) 갈라티아서 복음과 엇나가는 갈라티아인 질책ㆍ경고 ◇갈라티아는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에 있는 갈라티아는 바오로 사도 당시에 로마 제국의 속주로서 수도는 안키라(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였습니다. 이 갈라티아는 크게 북부 갈라티아와 남부 갈라티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북부 갈라티아는 주로 겔트족인 갈라티아 사람들(갈라티아라는 말이 켈트에서 나왔음)이 지내는 지역으로 안키라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중앙 중북부 지역을 가리켰고, 남부 갈라티아는 나중에 합병된 피시디아, 프리기아, 팜필리아 지역으로, 안티오키아를 비롯해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같은 도시들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1차 선교여행 때(45-49년쯤)에 남부 갈라티아 지방인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2차.. 2008. 11. 16.
(4) 코린토 2서 코린토 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 표시 코린토1서는 아직 어린 코린토 교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으며,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어떤 사목적 처방을 제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코린토2서 역시 코린토 교회에 대한 바오로의 염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바오로 사도의 인간적 면모를 다른 어느 편지에서보다 잘 보여주는 것이 코린토2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사도로서 겪은 숱한 고난들, 그리고 자신이 본 환시와 자신이 받은 계시 등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받은 모함에 대해 항변하고 사도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 ◇집필 배경과 시기 에페소에서 코린토1서를 써보낸 다음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의 이후 소식이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 사정은 바오로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바오로가 .. 2008. 11. 16.
(3) 코린토 1서 코린토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 호소 죽은 이들 부활이 없다는 일각의 주장 일축 부활이야말로 복음의 핵심 메시지임을 강조 ▲ 코린토 유적지. 뒤에 보이는 높은 언덕에는 환락과 매춘의 온상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코린토는 기원전 1000년쯤에 세워져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 번영하던 도시였으나 기원전 146년에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하면서 파괴돼 거의 폐허가 됐습니다. 약 100년 동안 방치되던 코린토는 기원전 44년 로마제국의 식민도시로 재건되기 시작했으며, 곧 제국의 속주 아카이아의 수도가 됐지요. 코린토는 남북으로는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교량 역할을, 동서로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잇는 해상통로의 요충지 역할을 하면서 급성장했습니다. 국제적 상업과 문화 중심지로서 다인종, 다종교가 혼합.. 2008. 11. 16.
(2) 테살로니카 1ㆍ2서 박해 속에도 복음 뿌리 내리자 감사 편지 이번 호부터는 바오로 서간들을 차근 차근 살펴봅니다. 「성경」의 목차에는 바오로 서간 순서가 로마서부터 시작되지만, 여기에서는 서간의 집필 연대순으로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 첫번째로 테살로니카 1, 2서입니다. ◇테살로니카는 테살로니카는 그리스 중부 테르마이코스 만에 위치한 그리스 최대의 항구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황 통치 시절인 기원 전 315년쯤에 카산드로스 장군이 세운 도시로, 테살로니카라는 도시 이름은 그의 부인 이름을 딴 것입니다. 테살로니카가 위치한 마케도니아 지방이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면서 테살로니카는 그 수도가 됩니다. 해상으로뿐 아니라 육로로도 로마에서 아시아로 연결되는 길목에 있어서 항구도시로서 또 무역 중심지로서 번창합니다. 자연히 .. 2008. 11. 16.
(1) 바오로 서간은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오로 사도 서간 신약성경 전체 27권 가운데서 바오로 사도가 썼다고 하는 바오로 서간은 모두 13권이다. 신약성경 거의 절반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인 셈이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복음서 4권과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묵시록을 제외하면 21권이 서간인데, 그중 바오로 서간은 거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그만큼 바오로 서간은 신약성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 중요하게 읽힌다. 바오로 서간과 서간에 나타나는 신학 사상을 공부하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알아본다. ◇바오로 서간은 모두 바오로가 직접 썼나 신약성경에서 바오로 서간으로 불리는 13권은 다음과 같다. 1)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 2)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코린토1서) 3)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2008. 11. 16.
(37) 사도직 부정하는 적대자들과 논쟁 코린토 후서에 등장하는 적대자들은 코린토 교회 내부의 사람들이 아니고 밖에서 들어온 유랑 선교사들이다(2코린 11, 4). 그들은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를 떠난 뒤에 코린토에 와서 선교한 이들로 추천서를 갖고 이곳저곳 옮겨 활동했다. 그들이 코린토에까지 와서 활발히 선교한 사실로 미루어 아마도.. 2008. 11. 9.
(36) 동역자 이름 언급하며 협력자로 소개 코린토 후서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바오로의 또 다른 동역자는 티토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운동을 독려하면서 쓴 2코린 8장에는 티토의 이름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2코린 8, 23에서 바오로는 티토를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입니다”라고 소개한다. 티토는 모금운동뿐만 아니라 바오로의 선교활동에도 동참했던 인물이다. 갈라 2, 1에 의하면 바오로가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갔다고 한다. 또한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이 바오로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소식을 듣고 티토 편에 편지(2코린 10~13장: 눈물편지)를 보내고 나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다가 마케도니아에서 그를 만나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또 한통의 편지(.. 2008. 11. 2.
(35) 그리스도 봉사자로 겪은 고난 강조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 2008.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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