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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바오로서간해설

(5) 갈라티아서

by 세포네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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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엇나가는 갈라티아인 질책ㆍ경고


◇갈라티아는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에 있는 갈라티아는 바오로 사도 당시에 로마 제국의 속주로서 수도는 안키라(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였습니다. 이 갈라티아는 크게 북부 갈라티아와 남부 갈라티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북부 갈라티아는 주로 겔트족인 갈라티아 사람들(갈라티아라는 말이 켈트에서 나왔음)이 지내는 지역으로 안키라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중앙 중북부 지역을 가리켰고, 남부 갈라티아는 나중에 합병된 피시디아, 프리기아, 팜필리아 지역으로, 안티오키아를 비롯해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같은 도시들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1차 선교여행 때(45-49년쯤)에 남부 갈라티아 지방인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2차 선교여행 때(50-52년쯤)에도 데르베와 리스트라 등 일차 선교여행 방문지들을 방문하면서 갈라티아를 횡단해 마케도니아로 향합니다(사도 16,1-10). 또 3차 선교여행 때(53-58년쯤)도 갈라티아 지방을 방문합니다. 말하자면 1차 선교여행 때는 갈라티아 남부 지방에, 2차와 3차 여행 때는 갈라티아 북부에 복음을 전한 셈이지요.
 
 ◇집필 배경
 우선 갈라티아서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린토서는 코린토 교회, 테살로니카서는 테살로니카 교회라고 서간의 수신인을 분명히 밝히지만 갈라티아서는 특정한 한 교회를 지칭하지 않고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1,2)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교회란 표현 때문에 갈라티아서의 수신처가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같은 갈라티아 남부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이라는 주장이 한때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갈라티아서의 수신인은 남부 지역이 아니라 안키라를 포함하는 북부 갈라티아 사람들이라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고, 오늘날에는 학자들 대부분이 이 견해를 따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갈라티아서의 수신인은 바오로 사도가 2차 선교여행 때에 복음을 전하고 3차 선교여행 때도 방문한 갈라티아 북부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게 좋겠지요.
 이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갈라티아 사람들이 바오로가 전한 복음 메시지와는 다른 가르침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6)하고 질타합니다.
 다른 가르침이란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이들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떠난 뒤에 다른 이들이 왔습니다. 이들은 아마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다교의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면서 할례를 강요했고 적지 않은 갈라티아 신자들이 거기에 혹했겠지요. 이런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이들의 그릇된 주장을 논박하면서 갈라티아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로 잡고자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그래선지 갈라티아서에는 상당히 격한 어조가 곳곳에 보입니다.'저주를 받아 마땅하다'(1,8.9)거나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3,1) 같은 표현이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육에 따른 삶과 성령에 따른 삶을 대비시킵니다. 이것은 갈라티아 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당시의 그릇된 이교도적 풍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자유를 빙자해 도덕적 방종에 빠져들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티아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런 도덕적 일탈 역시 바오로 사도가 서간을 쓰게 된 또 다른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필 장소와 시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오로 사도는 2차 선교여행과 3차 선교여행 때에 각각 갈라티아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3차 선교여행 때는 갈라티아를 거쳐 에페소에서 약 3년간 체류하는데 이때에 갈라티아서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 견해입니다. 만약에 3차 선교여행이 끝나고 썼다면 집필 시기는 적어도 58년 이후여야 합니다. 그런데 58년쯤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서에 나오는 바오로 신학은 갈라티아서에 나오는 것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라티아서는 적어도 로마서보다 이전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집필 시기는 54-55년 또는 55-56년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내용과 특징
 바오로는 인사말(1,1-5)에 이어 갈라티아 신자들이 자신이 전해 준 복음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경고합니다(1,6-10).
 그리고는 자신이 수행하는 사도직의 정당성을 상당히 길게 서술합니다(1,11-2,21). 이 대목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바오로는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경위를 설명합니다(1,11-24). 그런 다음에 예루살렘 사도회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파견됐다는 것을 정당화합니다(2,1-10). 이어 안티오키아에서 베드로 사도가 이중적 처사를 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2,11-14), 구원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2,15-21).
 3장부터는 갈라티아서의 핵심 메시지가 제시됩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율법과 성령(3,1-5), 율법과 믿음(3,6-14), 율법과 약속(3,15-29), 종살이와 자유(4,1-20; 5,1-12), 옛 계약과 새 계약(4,21-22), 육과 성령(5,13-26)을 날카롭게 대비시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은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의 실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누린다. 결국 구원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은 성령은 우리를 육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해준다.'
 이렇게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설명하고 나서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성령에 따른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권고합니다(5,1-6,10).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은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육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잘난 체 하지 않고 서로 시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의 짐을 져줍니다.
 서간 마지막(6,11-18)에서 바오로 사도는 할례를 강조하며 외형만 중시하는 이들을 다시 한번 질책하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각시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6,16).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새 창조의 출발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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