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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29) 1975년 한국교회사연구소 독립기관으로 활동 개시

by 세포네 2007. 2. 11.

▶한국교회사연구소 설립 40주년을 맞아 2004년 9월 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최석우 몬시뇰, 정진석 추기경, 최창무 대주교.(오른쪽부터) 
▶가톨릭시보 1975년 6월 29일자 3면

한국교회 최초 교회사 연구소 ‘독립’

“敎會史 연구소 開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가 6월 21일 오후 2시 김추기경을 비롯한 원로 성직자들과 사학계 권위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개소식을 가짐으로써 창립 11년만에 독립된 연구기관으로 재출발을 다짐하게 됐다.

이날 최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연구소가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기관으로 새출발하는 것이 기적처럼 생각된다면서 79위 순교복자 시복 5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장이 교회사연구를 특수사목으로 승격시킨데 의의가 크다고 말하고 학계의 한결같은 격려와 협조와 지도를 부탁했다.” (가톨릭시보 1975년 6월 29일자 3면 중에서)

한국교회사 연구의 주역

한국교회 최초의 교회사 연구기관으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한국교회사연구소. 가톨릭대학교 부설 기관으로 1964년 8월 17일 설립된 연구소는 11년이 지난 1975년 6월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가톨릭시보 6월 29일자는 연구소의 개소식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현판이 담긴 희미한 흑백 사진과 함께 비록 기사량은 얼마 안되지만, 이후 연구소가 한국 교회 역사 연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이날 개소식의 의미는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시작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자로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명예고문 최석우 몬시뇰에서 비롯됐다.

원로 역사학자인 이원순 교수와 파리외방전교회 창립 300주년 기념행사를 논의하다가 연구소 설립 제안에 의기투합했고, 이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구소 활동에 온갖 열정을 쏟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독립 연구 기관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지난 2004년 설립 40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업적과 성과를 정리하고, 하느님이 이 땅에 섭리하신 역사를 더욱 깊이 성찰하기 위한 새로운 다짐을 나누었다.

실로 한국 현대 교회사의 연구는 한국교회사연구소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학문과 역사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초보적인 인식에 머물고 있던 당시 한국 교회 안에서, 그리고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거둔 학문적 성과는 교회 발전과 성숙의 큰 원동력이었다.

우선 그 역경의 역사는 가톨릭대학교의 낡은 건물에서 시작해 혜화동, 이문동, 합정동, 광화문 등 무려 8곳을 전전하면서 현재의 서울 중구 저동 평화빌딩으로 이전해 비로소 번듯한 연구소를 마련했음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연구소는 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다른 어떤 전문 기관도 넘볼 수 없는 큰 성과를 거둬왔다. 사료 전시회, 강습회와 공개대학 설치, 동인회의 운영 등 교회사 연구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또 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 등의 발굴과 정리에 쏟은 열정은 엄청난 분량의 일차 사료들을 발굴, 정리해냈다. 이렇게 발굴된 사료들은 전문가들을 통해 번역과 정리 작업이 이뤄졌고, 이는 교회사 연구의 기초적인 자양분이었다.

나아가 ‘가톨릭대사전’의 발간은 한국 천주교회의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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