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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26) 1974년 한국 가톨릭 신자수 100만 돌파

by 세포네 2007. 1. 21.

“시대 요청 읽으며 교세 빠르게 성장”

“韓國 가톨릭 總信者 1百萬 突破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74年度 한국 敎勢 통계 發表
- 6.12%의 增加率 보여, 한해 동안 5萬 8千餘名 증가
- 전체 인구의 3.1%인 1백1만2천2백9명

1974년 12월 31일 현재 한국 가톨릭 총신자수는 드디어 1백만을 돌파한 1백1만2천2백9명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가 집계, 발표한 ‘74년도 한국 천주교회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남자가 42만 719명, 여자가 56만 4천6백55명, 교적 미정리자 5천 3명, 군인 영세자 2천1백30명으로 73년에 비해 5만8천4백10명의 신자가 늘어 지난 한 해 동안 6.12%의 신자 증가율을 보였으며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3.1%로 불어났다.” (가톨릭시보 1975년 6월 1일자 1면 중에서)

1974년 이후 천주교

전년도인 1973년의 신자 증가율은 무려 18.7%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이듬해인 1974년의 신자 증가율이 6.1%에 그친 것은 얼핏 급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년도 집계에는 ‘행불자’의 숫자가 전체 신자 수에 가산됨에 따라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4년부터는 이러한 가산 없이 정상적인 신자 증가만을 집계함에 따라 비록 증가율은 대폭 하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상적인 증가율이며 이는 상당히 높은 증가 수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신자수 100만명 돌파는 한국교회의 성장 추세에 하나의 획기적인 전기를 보이는 것으로 신자수가 10만명을 넘어선 것이 44년 전인 1930년말이었다. 이후 신자 수의 증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뤄져왔고 100만명의 신자수를 기록한지 불과 11년만인 1985년말에 다시 배가돼 200만을 돌파했다.

300만명을 기록한 것은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이뤄져 7년 뒤인 1992년말에 300만명을 넘어섰고, 다시 8년 뒤인 2000년말 4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교회의 이같은 빠른 양적 팽창은 8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80년대 신자 증가율은 연평균 7.54%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성장은 50년대의 폭발적인 교세 증가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신자 증가율이 폭발적인 성장 추세를 나타낸 요인에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당시의 사회 상황 자체가 지닌 요인에 크게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한국 사회는 고착화된 남북 분단 체제 아래에서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인간 존엄성이 침해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갈망이 깊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의 성장 속도에 비추어 두드러지게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데에는 당시 사회가 종교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 외에도 한국 천주교회가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읽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주화와 인간 존엄성 수호를 위한 투신으로 나타나는 적극적 사회 참여의 자세였다.

여기에 80년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이 이뤄진 200주년 기념 행사들과 서울 세계성체대회 등 대규모 종교 집회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집회들을 통해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고, 안팎으로 한국교회의 위상을 높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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