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마음의 정원]406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환난도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특히 남자들은, 군대에서나 일을 추진하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마치 영웅담처럼 얘기하는데 그런 것과 같은 것인가요? 우리 생각에 자랑이란 성공이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면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가끔 보면 아무 성취가 없는데도 어려움 겪은 그것만 가지고도 자랑하듯 얘기하고 특히 고생 안 한 젊은이들 앞에서 그러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진정 고생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겠습니까? 고생만 했다면 어쩌면 비루한 인생일 텐데 그것을 어찌 자랑할까요? 그.. 2020. 7. 5.
피해망상과 마귀병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마귀들 얘기는 공관 복음에 다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오와 루카 복음은 대체로 일치하는데 마태오 복음은 좀 다릅니다. 길이도 짧고 그래서 다른 두 복음에 있는 것들이 여기에는 없는데 반대로 라는 말은 다른 복음에 없는데 여기에 있고, 는 표현도 여기에만 있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을 보면 마귀 들린 사람들이 과연 마귀 들린 사람인지 그저 피해망상 환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입니다. 피해망상이란 마귀병과는 달리 정신병의 일종이고, 자기가 피해를 입는다고 확신하는데 실은 터무니없는 확신이지요. 오늘 주님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신 것은 그 두 사람을 꼭 집어서 만나러 가신 .. 2020. 7. 1.
받아들임에 대하여 오늘 연중 제13주일의 주제는 명확합니다. 받아들임입니다. 1독서 열왕기에서는 수넴의 여자가 엘리사를 예언자로 받아들인 얘기이고, 복음의 주님도 여러 가지 받아들임에 대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이 받아들임에 대해 생각을 하면 옛날의 씁쓰레한 기억이 납니다.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저희 일행을 맞이한 형제가 친절하게 저희를 맞이하기는 하였지만 친밀하게 저희를 맞아들인다는 느낌, 저희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친절과 친밀의.. 2020. 6. 28.
우리의 사랑이 주님을 통하면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 백인 대장의 말 중에서 이 오늘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와 '물 한 방울' 이런 표현들과 연결이 되며 그 의미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손가락 하나로도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는 주님의 힘, 물 한 방울로도 우리 갈증을 채우기에 충분한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 바로 이런 표현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손가락 하나, 물 한 방울, 한 말씀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채우시고도 남습니다. 문제는 이런 하느님께 대한 우리 자세와 우리 믿음입니다. 손가락 하나로도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는 힘이 주님께 있다는 믿음, 물 한 방.. 2020. 6. 27.
하느님 체험 오늘 열왕기의 얘기는 예언자 엘리야가 하느님을 체험하는 얘기입니다. 예언자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니 하느님 체험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니만큼 예언자에게 있어서 하느님 체험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지요. 제가 저를 봐도 제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지 못함은, 예를 들어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용감히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거창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작은 예언의 소리 곧, 그래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제가 용감하지 않고 두려움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느님 체험 부재중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약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 체험 부재라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하겠지요.. 2020. 6. 12.
삼위일체 대축일 - 따로가 아니라 함께 제가 이 축일을 지낼 때마다 누누이 얘기하는 바이지만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냄은 삼위일체 신학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지요.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자는 것이고, 우리가 삼위일체 사랑 안에 머물자는 것이며, 우리도 삼위일체의 사랑을 살자는 것이지요. 먼저 이 축일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삼위일체적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부모가 서로 사랑치 않고, 그래서 함께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문제인 경우가 많지요. 부모가 일치하여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서 서로 싸우면서 나를 사랑할 경우 두 분 모두 각기 나를 사랑하지만 자식을 서로 차지하려 하기에 자식은 혼란을 겪게 되고 그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아예 두 분의 사.. 2020. 6. 8.
배우는 자의 행복 오늘 서간은 바오로와 디모테오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데 인도하고 따르는 관계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고 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먼저 디모테오가 어떻게 자신을 따랐는지 얘기합니다.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과 처신을 그대로 잘 따랐다면 스승의 가르침과 처신이 참으로 본받을 만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자가 스승 못지않게 훌륭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우선 스승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아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그 가르침과 처신을 따를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어지는 얘기를 보면 스승이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어야만 하고, 고난.. 2020. 6. 5.
영적인 부작용이 없도록 "우리는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오늘 베드로 서간은 하느님의 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려야 함을 얘기하고 있는데 하느님의 날이란 무엇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날이란 하느님의 날이 아닌 다른 날들이 있다는 뜻일까요?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은 정말 새로운 하늘과 땅을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새로워진 하늘과 땅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하늘과 땅이란 지금의 하늘과 땅과 전혀 다른 하늘과 땅이고, 새로워진 하늘과 땅은 오염되어 있던 하늘과 땅이 그 오염이 사라져 깨끗해진 것처럼 죄와 불의로 가득차있.. 2020. 6. 2.
거듭되는 주님의 질문 어제 강론에서 저는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 "너 어디에 있느냐?"가 생기라는 명령만 내리시다가 첫 번째로 하신 질문이니만큼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것이 첫 번째로 하신 질문이기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잘살고 마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거지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지금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틀어 낭패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첫 번째 질문 못지 않게 중요한 질문이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질문일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론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질문인데 성찰이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묻기 전에 '나는 진정 주.. 2020. 5. 29.
사랑의 가장 큰 적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작별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데 당신 삼위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떻게 하면 성삼위 하느님처럼 하나가 될 수 있고, 하나가 되는 데 있어서 어떤 것들이 장애가 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제일 먼저 성격이 다른 것을 봤습니다. 사랑해서 하나가 되었지만 성격이 달라 갈라졌다고 하도 많이들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는 바이지만 다르기로 치면 성격이 다른 것보다 성(性)이 더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남성과 여성이 더 다릅니다. 그런데도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기에 만난 것입니다. 사랑했을 때는 다른 것이 문제가 없거나 오히려 남녀가 다르기에 서로 끌리고 사랑했었는데 사랑에 문제가 생기니 다른 것을 문제 삼습니다. 제가 .. 2020. 5. 27.
승천은 파견이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천사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서 있느냐?"고 말하는데 어찌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합니다. 스승이요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로 오르시는데 어찌 하늘을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하늘로 올라가시니 이제 당신은 우리하고 끝입니다.'하고 제자라는 사람들이 매정하게 돌아서도 된다는 말입니까? 사실 승천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사도가 아니라도 하늘을 봐야 하고, 더 나아가서 주님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야지요. 그래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와 봉헌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이 교환의 신비로 저희도 성자와 함께 하늘로 오르게 하소서." 그러므로 주님의 승천축일에 하늘나라에 희망을 두지 않.. 2020. 5. 24.
고통과 기쁨의 관계 "너희는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제가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요즘 많은 사람이 기쁨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제게 많은 분이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기쁨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고,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하실 텐데 진정 그렇습니다. 기쁨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기쁨을 추구하라고 하면 기쁨을 포기하기에 기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제가 얘기한 것이고, 좋아하더라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쁨을 좋아하면서도 원하지는 않을까요? 그것은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고생스럽기 때문입니다... 2020. 5. 2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