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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말씀 수용의 단계들

by 세포네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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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 있음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헛되이 돌아가는 일이 없고
뜻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은 아무리 하느님께서 말씀하셔도
우리 마음 밭이 어떠냐에 따라 아무 결실이 없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말씀에 모순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순(矛盾)이란 창이란 뜻의 모와 방패라는 뜻의 순이 합쳐진 말로서
장사꾼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자기가 파는 창은 모든 것을 뚫는다고 하고,
동시에 자기의 방패는 모든 것을 막는다고 한 데서 유래된 거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모순된 하느님 말씀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모순될 리가 없겠지요.
이런 믿음으로 두 말씀을 묵상해보니 제게는 이런 뜻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그래서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생기라는 말씀대로
다 생겨났고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보시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뜻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 인간도 다 그렇게 되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나고 난 뒤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라는 것을 주셔서
당신 말씀을 받아들일 건지 거부할 건지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비유에서 이 땅 저 땅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리셨지만
어떤 땅이냐에 따라 결실을 달리 맺는다는 것의 뜻입니다.
 
하느님은 폭군이나 조폭 두목처럼 말을 안 들으면 절단 내는 분이 아니시고,
당신이 사랑으로 하신 말씀을 우리 인간이 사랑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시고
그래서 선택의 자유도 주시고 시간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길바닥과 같을 때는 하느님께서 벽에 대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치 않아 그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수없이 그리고 간절히 말씀하셔도 와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깨닫지 못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깨닫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랑치 않아서입니다.
 
이보다 나아진 단계로서 우리가 돌밭과 같을 때도 있습니다.
돌밭이란 돌과 흙이 같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흙이 있기에 일단
씨를 받아들이지만 돌들로 인해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오늘 비유 풀이에서 말씀을 처음에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말씀 때문에 환난이 닥치면 걸려 넘어지는 단계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주님 말씀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싫어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말씀만 들으려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 단계는 씨가 뿌리는 잘 내렸는데 가시덤불에 덮인 단계입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래서 열매를 변변히 맺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한동안 많은 교회가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합니까?'라는 글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걸었던 것처럼 믿음이 부족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도 걱정에 싸이거나 유혹에 흔들리는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하느님 말씀의 열매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느님 말씀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행복하며, 생기와 활기가 넘치고,
그래서 남도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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