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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4061

가을 곁으로 길고도 길었던 장마도 지나는 듯하더니 태풍이 심술궂게 세차게 휘몰아 치며 지나갔어요... 역시 시간의 흐름은 막지 못하네요 가을이 성큼 다가온듯한 느낌을 주는 오후 그 곁을 지나봅니다~~ 2020. 9. 11.
사랑, 잘못을 보기보다 고통을 보는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병자가 있는데 어떤 것이 더 사랑입니까? 얼마나 아프냐고 위로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희망을 건네는 것입니까? 아니면 병의 상태와 원인을 정확히 알려주고 더 나아가 고쳐주는 겁니까? 병자에게 제일 필요한 사람은 의사입니까, 간호사입니까, 간병인입니까, 병문안을 자주 가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서로 병을 고쳐주는 사람, 곧 의사가 되어야 하는데 육체의 병은 고쳐주겠다고 하면 환자들이 환영합니다. 병의 원인이 뭔지 잘 알고 치료 방법까지 제시하면 너무도 고마워하며 그런 사람을 명의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심리적인 병이나 정신적인 병은 숨기려고 하고, 그 병을 고치자고 하면 부정을 하거나 불쾌해합니다. 그밖에도 성격이나 인격적인 결함과 영적인 병.. 2020. 9. 6.
선방의 죽비소리처럼 다가온 말씀 오늘 일어나 독서와 복음 묵상을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런 질문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내 위에 내려오시고 내가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이 꼭 좋을까? 이런 생각이 올라온 것은 아마 성령이 주님 위에 내리심을 얘기하는 어제 복음에 이어 또 성령 얘기가 오늘 말씀들을 도배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의문이 든 것에 제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저는 지금껏 성령이 제게 오시기를 기도해왔기 때문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제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이런 식으로 반복기도를 자주 바치곤 했던 저인데 어찌?! 어쩌면 정말 그것이 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악마가 은밀하게 유혹하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전에는 사랑의 불이 제 안에서 타오르길 진정 원했지만 지금은 그.. 2020. 9. 1.
십자가의 길이 참된 명예다 연중 제22주일 제1독서 (예레 20,7-9) 제2독서 (로마 12,1-2) 복음 (마태 16,21-27)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소명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일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십자가의 길 자기를 비우고 제 십자가를 지며 주님 따를 때 참 제자 될 수 있어 연중 제22주일의 말씀은 삶의 고통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참된 명예를 누리는 길을 밝힙니다. 내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들에게 새 희망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가 되기로 결심만 하면 됩니다. ‘인생은 고해(苦海)다’라는 말이 있듯이 삶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재난과 경기침체 하에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발자.. 2020. 8. 30.
혼자 풀지 않고 같이 푸는 것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오늘 복음은 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복음입니다. 그것은 마태오복음 외에 다른 복음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고, 그 내용에도 사실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주님께서 정말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가 주님께서는 당신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주장하지요. 주님은 당신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려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베드로의 수위권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오늘 복음을 갖고 베드로 곧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지만 그리스도교의 다른 종교들은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지요. 셋째는 고백성사 건입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겼다는 말씀에서 가톨릭은 고백성사를 통해 사제에게 .. 2020. 8. 23.
그리스도는 혹독한 현재를 푸는 열쇠 연중 제21주일 제1독서 (이사 22,19-23) 제2독서 (로마 11,33-36) 복음 (마태 16,13-20) 예수님 신원을 고백하고 새로운 신원을 부여 받은 베드로 진정한 왕임을 선언하고 구약에서 계시된 하느님 구현을 표현 베드로, ‘반석’이라는 이름 받고 교회 주춧돌 역할 맡게 돼 하늘나라 열쇠 받음으로써 교회의 모든 것 매고 푸는 권한 부여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 지인 한분이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게요, 하면서 사실 현재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로나와 너무도 길었던 장마, 그리고 기록적인 폭우, 상상하지 못할 만큼 불어난 실업과 실직…. 불안한 몰락을 역력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부인할 수 없는 요즘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모든 문제.. 2020. 8. 23.
버리면 받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어제 부자 청년 얘기에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따르라는 말씀에 주님 따르기를 거부한 부자 청년 얘기에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자기와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가 있는지 주님께 여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베드로가 의기양양하다느니, 대가를 바라는 속물이라느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이해하는 차원에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정말 자기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여 순수하게 묻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대가를 바라는 것도 속물근성이라고 치부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 2020. 8. 18.
두려움에서 나와 하느님 앞에 서기 위해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주제는 두려움에서 나와 하느님 앞에 섬입니다. 일본의 많은 청년이 오래전부터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우리의 젊은이들도 그 정도는 아니어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집 밖 세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방 밖 가족들에게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갇혀 지내고 홀로 지내는데 누가 가둬서 갇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어서 갇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숨습니까? 그것은 오늘 엘리야가 이제벨이 두려워 도망쳐 와 동굴에 숨듯이 사람들이 두렵고 심지어 가족까지 두려워 숨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제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죽음을 마주하는 두려움인 데 비해 은둔형 외톨이들의 두려움은 그저 자기를 간섭하고 성가시게 하는 모.. 2020. 8. 9.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재미보다 의미를 오늘 주님 변모 축일에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란 베드로의 말이 다른 말씀들을 제치고 제 맘에 와 닿았는데, 그런데 그 와 닿은 것이 결코 좋은 뜻에서가 아닙니다. 천지분간 못하고 참 철딱서니 없다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 말에는 음지는 피하고 양지만 찾는 철부지스러움이 있습니다. 철이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 인간은 미성숙할수록 깨끗한 것만 좋아하고, 좋은 것만 좋아하는데 바로 그런 겁니다. 지난 포르치운쿨라 행진 중에 어떻게 행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면서 재미있게 걷는 것과 의미있게 걷는 것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 얘기를 한 데에는 요즘 사람들이 의미보다 재미를 쫓는 것에 대한 저의 염려와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있지요. 재미를 영어로 표현하면 Fun이라고 할 수 있는데 .. 2020. 8. 6.
용서할 의무는 주셨어도 단죄할 권한은 주지 않으신 주님 오늘 복음은 하느님이 선이신데 어찌 세상에 악이 있는지, 악한 사람이 판을 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왜 벌주시지 않는지, 이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악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원수가 악의 씨를 뿌렸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원수는 누구인가? 그것이 관건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선신과 악신이 있어서 선은 하느님에게서, 악은 악신에게서 나왔다는 2원론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하느님께 거역하는 존재는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원수는 꼭 악신이나 악마가 아니라 하느님을 거스르는 우리 인간도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 정작 얘기코자 하시는.. 2020. 7. 19.
말씀 수용의 단계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 있음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헛되이 돌아가는 일이 없고 뜻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은 아무리 하느님께서 말씀하셔도 우리 마음 밭이 어떠냐에 따라 아무 결실이 없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말씀에 모순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순(矛盾)이란 창이란 뜻의 모와 방패라는 뜻의 순이 합쳐진 말로서 장사꾼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자기가 파는 창은 모든 것을 뚫는다고 하고, 동시에 자기의 방패는 모든 것을 막는다고 한 데서 유래된 거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2020. 7. 12.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 복음은 어제 주님께서 추수할 곳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하느님께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고 하신 것에 이어지는 복음이고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왜 열두 사도냐 하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열둘이라는 숫자는 갈라지거나 흩어지지 않은 완전체의 숫자입니다. 저의 사가를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여섯 형제가 다 모여야 완전하지요. 그런데 만일 이제 나이 먹어 누구 한 사람이 먼저 우리 곁을 떠난다면 옆구리가 무척 허전할 것이고 그보다도 더 의가 상해서 한 사람이라도 같이 모이지 않는다면 모일 때마다 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우리 교회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것이 본래 하느님 집안이고 그.. 2020.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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