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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배우는 자의 행복

by 세포네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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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간은 바오로와 디모테오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데

인도하고 따르는 관계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고 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먼저 디모테오가 어떻게 자신을 따랐는지 얘기합니다.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처신, 목표와 믿음, 

끈기와 사랑과 인내를 따랐으며,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과 처신을 그대로 잘 따랐다면 

스승의 가르침과 처신이 참으로

본받을 만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자가 스승 못지않게 훌륭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우선 스승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아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그 가르침과 처신을 따를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어지는 얘기를 보면

스승이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어야만 하고,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끈기와 사랑과 인내로 따라야 하는 그런 삶인데

그런 가르침과 삶을 그대로 함께 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웬만한 사람은 그런 삶을 따를 마음이 아예 없지요.

 

그런데 말들 안에서 제자의 훌륭함이 드러나는

또 다른 단서를 볼 수 있는데

스승의 목표와 믿음도 따랐다는 대목입니다.

같은 목표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사실 이런 정도라면 스승의 뒤를 따르는

제자 이상의 동반자이고 동지지요.

 

그러니 나의 목표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겠다는

이런 제자를 하나라도 만난 스승은

참으로 성공한 스승이고 행복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의 삶을 통해 생각해보면

훌륭한 제자를 가진 스승이 되는 것보다

훌륭한 스승을 둔 제자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제자를 만나기 어렵고 그래서

스승으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르치고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저처럼 오랫동안

가르치는 삶을 산 사람은 훈장 기질이 몸에 배어

잘 살지도 못하면서 노상 가르치려고만 들고,

무엇보다도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사람은 모름지기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세 살 어린애한테도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육체의 성장판이 닫힌 것처럼

성장이 멈춰버린 것이고 하늘을 향한 문이 닫혀 버린 거지요.

 

이런 저이기에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디모테오는

오늘의 저에게는 부럽고 모범이 되는데

서간은 디모테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디모테오가 누구한테 배웠는지 잘 인식하고 있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배워서 확실히 믿는 바를 잘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배운 대로 제자가 살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치라고

은근히 부추기는 스승의 고마운 권고와 격려이지요.

 

아무튼 저도 먼저 배우고 그런 다음 배운 대로 살뿐 아니라

나누려는 자세로 성경을 가르쳐주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꿈꾸는 오늘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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