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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53

예수를 심판한 대사제 가야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불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유다교 지도자들은 위험을 느끼며 전전긍긍했다. 사실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가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믿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유다교 지도자들은 위협을 느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대사제인 가야파는 서둘러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대사제인 가야파는 예수님을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가야파는 막강한 의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대사제는 산헤드린 의회의 의장과 유다 민족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지도자였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은 사.. 2006. 2. 17.
믿음의 동행자, 문제의 해결사 디도 사도 바오로에게는 여러 명의 협조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디도였다. 디도는 그리스 사람으로 사도 바오로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의 전교활동에는 항상 그가 동행했다. 디도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신자였다. 사도 바오로가 디도를 가리켜 “같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진실 된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디도는 사도 바오로의 손발처럼 든든한 협조자일뿐 아니라 영적인 부자지간이었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생각할 때 디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모범으로 여겼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상황을 예루살렘교회에 알리려 할 때 모델로 디도를 데.. 2006. 2. 17.
용기 있는 제자,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 = 요한네스 아파카스, 이콘-예수님의 시신을 내림, 1600년, 템테라, 38.8×32.2cm, 크레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 의원 중에서도 덕망이 높은 인물이었다. 산헤드린(의회)이란 유다인의 최고기관으로 재판권까지 갖고 있었다. 산헤드린은 평민 가문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백성들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의회 의원이었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오래 전에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있던 터에 우연한 기회에 그분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예수님과의 첫 만남부터 요셉은 큰 매력을 느꼈다. 여태껏 그분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기쁜 소식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 때문에 내놓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 2006. 2. 17.
야고버와 요한의 어머니 제베데오의 부인이며 야고버와 요한의 어머니는 아주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살로메라고 전해진다. 물론 두 아들 야고버와 요한도 사도 단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로 자리 매김 하는데는 살로메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녀는 재정적으로도 부유하여 예수의 일행이 일을 하는데 많은 물질적인 후원뿐 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사업을 전심전력으로 도왔던 여성 제자그룹의 핵심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을까? 유다 사회에서 여성은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유다인 남자들이 하루에 세번 드리는 기도에서도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에 감사 드리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당시의 가치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남자.. 2006. 2. 17.
성서의 인물이 숨쉬는 땅 “어떻게 여기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사람들이 처음 이스라엘에 와서는 쉽게 하는 말이다. 사실 이스라엘 땅을 보면 하느님이 아브라함 성조에게 하신 이 말씀이 선뜻 이해되기 어렵다. 남쪽으로는 넓은 광야지대에다 북쪽으로도 너무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땅이 유목민이었던 그들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땅이었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이 마련하시고 약속하셨기에 이스라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땅이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은 좋은 땅을 의미하는 성서 히브리적 표현이다. 그리고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최초에는 목축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했던 것 같다. 척박한 땅, 이스라엘에도 3월 중순께가 되면 거친 유대 광야조차 천연.. 2006. 2. 17.
'신앙과 학문의 인물, 아폴로'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있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생으로 구약성경에 능통하고 설득력 있는 웅변가였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높은 지식을 갖춘 학자였다. 유다인들이 많이 살던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아테네 다음가는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드리아는 BC. 3백년경에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대도시였다. 이곳에서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 성서가 번역되기도 했다. 이 도시는 학문의 도시답게 박물관이나 도서관, 그 밖의 학문을 위한 시설들이 많이 있었다. 아폴로는 이러한 도시의 분위기에서 마음껏 학문에 정진하여 탁월한 지식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아폴로는 공부하기를 즐겨한 수재였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유다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 .. 2006. 2. 17.
헌신적인 제자 디모테오 에페소에 있는 디모테오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스승 바울로에게서 온 편지였다. 디모테오는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뜯고 읽어 내려갔다. 얼마 전 사람들을 통해 이곳 사정을 스승에게 기별을 보냈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디모테오가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디모테오는 내심 스승이 이곳 에페소를 떠나 자신에게로 오라고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로는 그냥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 디모테오!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 말했던 것처럼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은 사실 디모테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스승의 이 말은 "끝까지 싸워라! 회피하지 말라!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라!"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디모테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2006. 2. 17.
경건한 이방인 고르넬리오 가이사리아는 요빠에서 북쪽으로 약50 킬로미터 떨어진 지중해변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이 도시는 헤로데왕이 로마황제를 위해 재건했고 로마총독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로마군대가 주둔해있어서 도시의 성격이 몹시 로마적이고 이방인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가이사리아에 고르넬리오란 백인대장이 있었다. 백인대장이란 백명의 사병을 거느리는, 오늘날로 보면 중대장 정도의 지휘관을 의미한다. 백인의 사병으로 편성되는 백인대는 로마군제의 핵이라 할 수 있다. 투표를 할 때도 백인대별로 내부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한 표를 행사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기초적인 단위가 되었다. 그러므로 백인대장이란 당시에 상당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르넬리오는 온 집안 식구와 더불어 하느님을 경외하며 백성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하느님.. 2006. 2. 17.
첫 번째로 선택 받은 사람,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베사이다 출신으로 시몬 베드로와 형제다. 안드레아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그가 스승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마침 그 옆을 지나갔다. 이를 본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라고 말했다. 순간 안드레아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요한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따라옵니까?” 그러자 요한은 “선생님, 선생님이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찬찬히 살핀 후에 나지막이 말했다. “와서 보시오. 나와 함께 갑시다.”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때는 네 시쯤이었다. 도착한 곳.. 2006. 2. 17.
교회의 반석, 사람낚는 어부 베드로 나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던 어부였습니다. 나는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나이였죠. 아는 것이라곤 그물질하는 것뿐이고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무식하다면 무식한 사람이었죠.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난 것은 바람이 심하던 어느 봄날이었죠. 호숫가에서 내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셔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분은 한눈에 보아도 우리와 달리 상당한 품위가 있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안녕들 하시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며칠째 고기를 잡지 못해 마음이 몹시 어두웠던 나는 퉁명스럽게 툭 뱉었습니다. “보면 모르시오. 눈은 장식품이오?” 오히려 그분은 빙그레 웃으시며 나직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006. 2. 17.
영원한 물을 찾은 사마리아여인 옛날 유다 나라는 지금의 팔레스타인보다는 크지만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전체 면적도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넓이에 불과하다. 예수님 시대에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 지방이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방인 지역이라 알고 있는 사마리아도 본래는 유다 땅이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사마리아를 끔찍히 싫어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원전(BC) 720년께 이스라엘의 북쪽인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에 의해 침략을 당했고 후에는 바빌론에 의해 남쪽 유다 왕국도 멸망했다. 이때 앗시리아는 식민지 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즉, 피를 섞이게 해서 민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무서운 정책이었다. 이후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피가 섞이게 됐다. 그래.. 2006. 2. 17.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캐오 자캐오는 세리였다. 세리란 유다인 사회에서는 배척을 받는 직업이었다. 세리들은 유다인들에게 두배 내지 세배의 세금을 징수하는 등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로마제국의 앞잡이와 같은 일을 하는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들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다. 겉으로는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을 했다. “저 세리, 로마의 앞잡이, 이방인과 같은 개 같은 놈이 지나간다. 야 소금 뿌려라!” 유다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부르곤 했다. 자캐오도 돈을 많이 벌고 호의호식했지만 마음속에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양심의 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겐 돈과 재물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다... 200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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