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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53

쓸모있는 종 오네시모 주인 필레몬에게 용서를 청하고 있는 오네시모.   '유익하다'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진 오네시모는 골로사이에 있는 필레몬의 집에서 몸 붙여 살던 노예였다. 당시의 노예들은 대부분 고대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또 전쟁 포로이거나 노예 상인들이 팔아 넘겨 노예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므로 주인은 노예를 마음대로 물건을 사고 팔듯이 매매할 수가 있었다. 주인은 심지어 노예를 사형시킬 권한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필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는 왜 자신이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 2006. 4. 23.
사랑받는 제자 루가 루가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머리 속으로 지나가는 젊은 시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일생을 한 순간에 바꾸었던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루가는 자신의 일생을 결코 사도 바오로의 삶과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사도 바오로와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섭리하고 준비하신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주 우연히 사도 바오로의 주치의 노릇을 하면서 그의 전도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사실 사도 바오로는 고질병을 갖고 있었고 전도 중에도 자주 육체적인 질병과 고통으로 신음하였다. 그때마다 루가는 사도 바오로의 곁에서 극진하게 간호하곤 했었다. 루가는 유다인이 아니라 .. 2006. 4. 23.
사랑의 증거자 필레몬 필레몬은 사도 바오로에게서 세례를 받고 신도가 된 사람이었다. 필레몬은 골로사이에 살고 있던 큰 부자였다. 사도 바오로와는 사목자와 신자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하인 하나가 필레몬에게 급하게 전갈을 알렸다. 필레몬의 집에서 도망쳤던 오네시모라는 종이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주인님, 오네시모가 찾아와서 주인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누구라고? 오네시모라고 했나, 자네?” 오네시모는 벌써 오래전에 자신의 집에서 몸 붙여 살던 몸종이었다. 그는 몹시 게으른 종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의 돈을 도둑질을 하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에 오네시모처럼 주인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고 도망친 경우에 잡히면 엄벌에 처해지는 경우가 보통.. 2006. 4. 23.
'다시 생명을 찾은 도르가' 요빠에 다비타라는 여신도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그리스말로 ‘사슴’이란 뜻의 ‘도르가’라고도 불렀다. 그녀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했던 믿음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문을 활짝 열어 가난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입히고 먹을 것을 주었다. 사람들은 길가에서 굶주리는 이들을 만나면 “저기에 있는 도르가의 집에 가보세요.”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버림받은 과부나 고아들이 항상 북적거렸다. 그녀는 다른 이의 아픔을 감싸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고 배고픈 이들의 양식을 챙겨주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를 .. 2006. 4. 23.
집념 믿음의 가나안 여인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예수님의 일행이 띠로와 시돈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지방에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숨이 넘어가듯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달려왔다. 당시에는 메시아를 부를 때 다윗의 자손이라고도 불렀다. 그녀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치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 아무런 대꾸도 않으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가셨다. 그녀는 자신의 소리가 마치 개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불쾌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의 일행을 따르며 더 큰소리로 예수님께 계속 간청했다.. 2006. 2. 17.
깊은 믿음의 소유자,회당장 야이로 선생님! 저는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열두 살 밖에 안된 제 어린 딸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십시오.” 예수님의 일행이 배를 타고 호숫가 건너편에 도착해서 얼마 안되어 군중들 틈을 비집고 지체가 높아 보이는 점잖은 이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입을 떼셨다.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잘 아는 이가 선생님이 병자들을 다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럼 앞장 서시오. 당신 집으로 가봅시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다. 회당은 그리스어로 ‘시나고가’로 기도와 집회의 장소였다. 그래서 보통 회당이라 하면 유다인이 기도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넓은 의미로 기도하는 모든 장소를 가리키기도.. 2006. 2. 17.
좌절을 극복한 마르코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가 아들과 같이 아끼는 제자였다. 이름은 ‘요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식 이름과 희랍어 이름을 동시에 갖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마르코는 열심한 믿음을 지녔던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베드로 사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또한 마르코는 희랍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의 통역사로 전교의 일선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 사도가 청중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에 관해 자연스럽게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는 주님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내용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였다.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산실이었다. 마르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예배모임의 .. 2006. 2. 17.
필립비 교회의 첫 열매 리디아 사도 바울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다른 협조자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바울로는 바르나바에게 “우리가 이미 주님의 말씀을 전한 도시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교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봅시다.”하며 전도여행을 제안했다. 바르나바도 쾌히 승낙하며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자고 했다. 그러나 바울로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반대했다. “마르코는 우리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던 겁쟁이가 아니오. 난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갈 수는 없소.” 바르나바는 “옛일이 아니오, 모두다 잊어버리고 시작하는 마음으로 같이 갑시다.”하며 바울로가 마음을 바꾸도록 간청했다. “난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소.” “이런 무슨 고집이 이렇게 센지 모르겠네…” 결국 바울로와 .. 2006. 2. 17.
키프로스의 첫 영세자 세르기오 바오로 총독 자료제공=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정웅모 신부.  바르나바와 바오로에게 성령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이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그들은 성령의 이끄심 대로 셀류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 바오로 사도의 세계 선교를 위한 첫 번째 선교여행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떠나 키프로스 섬에서 첫 번째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선교여행의 열매는 키프로스 섬의 총독인 세르기오 바오로 였다. 키프로스는 바르나바의 고향이었다. 바르나바는 일찍이 키프로스에 있는 자신의 땅을 판 돈을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해서 사도들 발 앞에 갖다 놓은 적이 있었다.세르기오 바오로는 영리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관저로 불러 하느님 말씀을 듣고자 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2006. 2. 17.
탕자의 아버지 나는 평생동안 모은 재산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은 나에게 상속재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지요. “아버지, 언젠가 저에게 주실 상속지분을 기왕이면 지금 주십시오. 아버지, 제가 젊을 때 재산을 물려받아 제 마음대로 사업을 해 보겠습니다.”나는 무척 마음이 섭섭했어요. 작은 아들은 마치 나에게 “나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이제 아버지는 저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아버지가 이젠 지긋지긋 합니다. 차라리 죽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한편 나는 아들이 걱정도 되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지요. 나는 작은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작은 .. 2006. 2. 17.
하느님께 올바른 기도를 한 세리 어느 날 세리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갔다. 늘 그렇지만 그에게 성전에 들어가는 건 큰 고통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 멸시하며 마치 벌레 보듯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이 너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성전에 오게 된 것은 며칠 전부터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눈치를 보며 성전을 기웃거리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을 흘깃 쳐다보며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낯이 익은 바리사이파 사람이었다. 바리사이파라는 말은 “분리된 사람”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교의 종교적 당파 중 하나로 불경건한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일반인과는 구별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생을 철저히 율법 중심적으로 살고 있다. 그들에게 율법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2006. 2. 17.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 빌라도는 예수님 시대에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로마 정부가 파견한 총독이었다. 식민지 정책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종교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사형권한과 집행권 등 중요한 권한은 여전히 총독에게만 있었다. 총독의 가장 큰 역할은 당연히 반란 없이 식민지를 잘 통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대사제 가야파는 예수를 체포하여 빌라도에게 재판을 하도록 데려왔다. 빌라도는 솔직히 예수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간간이 들리는 소문 때문에 호기심은 없지 않았다. 빌라도는 귀찮았지만 대사제의 요청이므로 어쩔 수 없이 재판을 맡았다. 빌라도는 로마 총독이란 막강한 지위로 유대를 다스렸지만 골치 아픈 종교문제에는 별로 관여를 하고 싶지 않았다.. 200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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