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영성]/세계교회100사건101 [100] 복자 마더 데레사 수녀 ◀ 한평생 가장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던 마더 데레사는 1997년 9월 5일 세상을 떠났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2003년 10월 19일 시복됐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한평생 참 평화의 길 제시한 ‘사랑의 혁명가’ 새 천년기 인류의 나아갈 방향 제시 2000년 대희년은 교회와 인류에 새로운 세상,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를 고대하는 인류의 염원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새 천년기를 맞는 전세계 가톨릭교회는 막 문을 연 제삼천년기가 하느님의 참 평화가 지구촌을 가득 메우게 되기를 간절하게 염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시 인류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 속에서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눈 채 형제의 피를 흘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인류는 초강대국 미국의.. 2005. 11. 12. [99] 2000년 대희년 개막 화해·일치 향한 새 천년기 열어교회의 과거 잘못 과감히 용서 청해사형제 폐지·부채탕감 운동도 전개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육중한 청동 「성문」(the Holy Door)을 활짝 열어젖히며 역사적인 2천년 대희년의 문을 열었다. 예수 강생 2000년, 세상의 죄를 보속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천년기의 막을 연 대희년의 개막은 실로 교회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세계 교회의 대희년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1994년 11월 10일자로 교황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 2005. 11. 12. [98] 새 교회법 반포 ◀ 사회변화와 공의회의 새로운 제안들로 인해 교회법의 재검토가 제기, 1983년 1월 새 교회법을 반포했다. 사진은 바티칸시국 재판정 모습. 공의회 정신 담은 개혁적 법률 새로운 사회변화.질서에 따른 요청 1983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반포 1981년 10월 28일 교황청 세계 주교대의원회의 회의실에서는 전세계에서 모인 교회법 전문가와 학자, 주교들 80여명이 모여서 새 교회법전의 초안을 놓고 마지막 논쟁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미 8일째에 들어선 이날은 지난 2000년간 있어온 수많은 교회법령들을 하나로 집대성해서 새로운 세계와 사회 상황, 교회 현실에 맞도록 집대성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휴식도 없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이날 회의를 거쳐 참석자들은 새 교회법전의 초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추기.. 2005. 11. 12. [9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C 냉전 녹인 평화의 사도131개국 찾아 용서 화해 사랑 촉구고르바초프 만나 ‘냉전 청산’ 길 터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양대 전쟁으로 얼룩졌다. 그 중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대량 살상 무기를 서로에게 겨눈 채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군비경쟁에 열을 올렸다.이른바 냉전(Cold War)의 시대였다. 냉전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W. 리프먼이 저술한 「냉전」(The Cold War, 1947)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됐고 미국의 재정 전문가이며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의회토론에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한반도의 분단을 포함해 인류를 양분했던 비극적인 대립 체제로서의 냉전은 이후 상대 진영을 초토화할 .. 2005. 11. 12. [96] 남미 해방신학의 태동 억압 수탈서 인간 해방 추구1960년대 후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모든 억압과 수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신학으로서의 해방신학이 태동한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1968년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메데인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이다.이른바 메데인 문헌으로 불리는 이 총회의 후속 문헌은 가난을 단지 종교적인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의 구원으로서 해방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남미의 상황을 「제도화된 폭력」과 「구조적 불의」로 규정했다.해방신학의 태동은 우선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에서 오는 불의한 상황에 기인한다. 완강한 봉건제도와 중앙집권적 군주제에 바탕을 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무력을 앞세워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지배계급을 형성해 식민통치를.. 2005. 11. 12. [95] 메데인 문헌(Medellin Documets) ◀ 메데인 문헌은 1968년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 결과 문서를 말한다. 사진은 1992년 도미니카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주교 모임. “불의 개선위해 정치참여를” 라틴아메리카 사회개혁 지침 제시 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 출범 촉진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음을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에게 전해주었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경제적 현실 속에서 나온 메데인 문헌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교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혁신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메데인 회의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보다도 더욱 뜻깊은 성.. 2005. 11. 12. [94] 한국교회 103위 성인 시성 ◀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의 순교 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했다. ‘세계 속의 한국교회’ 자리매김 유래없는 대규모에 현지서 거행 교회의 중심이동 예시해준 사건 『이날은 200년의 역사에 단 한 분의 성인도 모시지 못한 초라한 교회가 전세계 가톨릭 교회 사상 최초로 한꺼번에 103위 성인을 모시게 된 풍성한 교회로, 복자들의 후손이 성인들의 후손으로 그리고 한국 속의 교회가 세계 속의 교회로 격상되고 새롭게 태어난 영광과 축복의 날이었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13일자). 한국교회 최대 경사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여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한국의 순교 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 2005. 11. 12. [9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는 전세계 지역교회의 사목과 교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 교회 모습 형성의 계기 『…이번 공의회가 본질적으로 불변의 교리와 다른 어떤 신기한 것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대에 맞추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어 가면서 시대가 주는 위험에서 신자들을 보호하고 신앙생활을 완전히 하도록 하는 길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 뿐이다』(가톨릭시보 1963년 9월 15일자 사설 「공의회를 정확히 인식하라」 중에서). 1962년 10월 11일, 전세계에서 온 2540명의 주교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가로질러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입장했다. 이 장엄한 행렬은 전세계에 라디오와 TV로 생생하게 중계됐다. 현대 교회의 모습을 형성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 2005. 11. 12. [92] 제2차 세계대전과 교회 ◀ 히틀러는 정교조약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탄압했다. 나치 “교회는 위험한 저항세력” 정교조약 불구 공공연한 탄압 계속 일부 “히틀러 정권에 협력” 주장도 예수회 소속의 역사학자 찰스 R. 갤러거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 9월 1일자에서 교황 비오 12세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씻어줄 또 하나의 사실을 보고했다. 갤러거는 이 보고서에서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후에 비오 12세가 된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 고위급 외교관들과의 모임에서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이교도이며 반종교적인 인물이라고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파첼리 추기경이 히틀러 정권에 대해 전혀 어떠한 정치적 타협의 여지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오 12세는 일부 사가와 유다교 지도자.. 2005. 11. 12. [91] 전례운동 적극적 능동적 미사참례 길터벨기에 독일서 시작 유럽으로 확산성서 보급 운동도 새롭게 나타나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거대한 비극을 체험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정신적 상황의 조성으로 이어졌다. 낡은 사고와 구속이 폐기되고 새로운 시작이 요청됐다.물론 이것은 교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놀라운 변혁의 시기였다. 교회 안에서 새롭게 일기 시작한 자각과 쇄신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20세기 초반의 전례운동과 성서운동이었다.이 운동들은 이미 지난 세기부터 일부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던 교회 쇄신의 노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들은 나아가 공동체로서의 교회, 그리스도 신비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함께 금세기 최대의 교회 쇄신 노력인 제2차 바티칸공.. 2005. 11. 12. [90] 교황 비오 11세와 라테란 조약 교황 바티칸 통치권 완전 회복영토와 주권 지닌 독립국가로 인정이탈리아와의 오랜 갈등 대립 해소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중의 하나인 바티칸 시국. 그러나 총 면적 13만3천여평, 그 3분의 1이 정원으로 되어 있는 이 작은 도시 국가는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심장부이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시국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국제 무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엄연한 독립 주권 국가이다.바티칸 시국은 교황청과 분명하게 별개의 명칭이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동등하게 인정받고 있으며 이 국가의 통치자인 동시에 교회의 수장인 교황 안에서 분리시킬 수 없게 일치돼 있다. 한마디로 바티칸 시국은 교황의 세속 주권이 인정되는 장소이자 세속적인 권한과 영적인 권한이 일치돼 행사되는 유일한 장소.. 2005. 11. 12. [89]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 한국 순교사 세계교회가 인정 교회 창설이래 최대경사 순교신심 다양하게 확산 교황 비오 11세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대규모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뒤 가톨릭 교회는 참된 평화와 공동체,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전쟁이 끝난 얼마 뒤인 1922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1세(1922~1939)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교황직의 목표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1925년 12월 11일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해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한다. 바로 그 해 교황은 아시아 대륙의 한 켠에서 피로써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던 조선의 순교자 79명을 복자로 선포한다. 이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민족.. 2005. 11. 12.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