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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신약)

성서의 인물이 숨쉬는 땅

by 세포네 200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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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기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사람들이 처음 이스라엘에 와서는 쉽게 하는 말이다. 사실 이스라엘 땅을 보면 하느님이 아브라함 성조에게 하신 이 말씀이 선뜻 이해되기 어렵다. 남쪽으로는 넓은 광야지대에다 북쪽으로도 너무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땅이 유목민이었던 그들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땅이었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이 마련하시고 약속하셨기에 이스라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땅이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은 좋은 땅을 의미하는 성서 히브리적 표현이다. 그리고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최초에는 목축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했던 것 같다. 척박한 땅, 이스라엘에도 3월 중순께가 되면 거친 유대 광야조차 천연색의 들꽃들이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솔로몬의 영화를 들꽃의 아름다움과 비교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대개 한달 정도 남짓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땅은 우리 신앙인에겐 무척 의미있는 땅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인물들이 활동했던 땅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바다처럼 넓은 갈릴래아 호숫가는 2000년전 그물질을 하던 어부들에게 다가가 제자로 불렀던 장소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이른 새벽이면 작은 배들이 여전히 그물질을 하고 있다. 새벽녘에는 그들의 잡담소리가 바람결에 아주 가깝게 들리곤 한다.

갈릴래아 호수는 주님이 공생활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곳이다.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실 것 같은 상념에 빠지게 하곤 한다. 주님은 왜 이 지역에서부터 복음 전파를 시작 하셨을까? 왜 세련되고 풍족한 도시보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더 많이 시간을 보내셨을까? 너무 당연한 질문이 자꾸 되뇌어진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생기넘치는 푸른 지대다. 호수 주변에는 나무들과 갈대, 풀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다. 갈릴래야 호수는 어떤 장소보다도 주님의 현존을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참 신비롭다 지금이라도 파도를 넘어서 주님께서 “무얼 좀 잡았나?”하시며 다가올 것만 같은 곳이다.

갈릴래야 호수의 풍요로움을 대하면 금방 사해의 삭막함이 비교해서 생각나기 마련이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다. 이곳은 염분이 보통바다의 다섯배나 많아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해는 요르단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곳으로 흘러보내지는 않는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면 그 자체가 죽음인가? 불과 얼마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사해와 갈리래야 호수는 많은 묵상거리를 제공해준다.

이스라엘 곳곳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맞춰 기념하는 성당들이 유난히 많다. 그 성당들 중에서도 갈릴래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산상수훈교회'가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서있는 돔 형식의 성당 뒤편으로 가면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각박하고 지쳐있는 삶 속에서 주님의 여덟가지 참다운 행복 말씀을 듣고 한줄기 바람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을 것 같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위안처럼 들려오는 복된 장소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도 수많은 성지들이 있다. 그러나 성지라고 특별히 순례하는 곳 외에도 온통 예루살렘, 아니 이스라엘 전체는 성서의 인물들이 숨쉬는 곳이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오랜 역사의 흔적이 새겨있는 듯하다. 이 길을 따라서 주님과 제자들이 걸어가셨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다.

올리브 산 정상에서 게셋마니 계곡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신 것을 기념하는 '눈물성당'이 있다. 그 성당 마당에 서면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님이 그 근처 어디선가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주님이 흘리신 눈물의 의미가 새삼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또한 예루살렘 순례 중에는 모든 이가 한번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 마련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따라서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그곳은 대부분 상점들이 즐비하고 상인들의 호객행위로 무척 복잡하다. 기도 중에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의 소음 때문에도 여러번 기도를 중지할 정도다. 재미있는 건 소매치기들도 이곳에서 많이 활약(?)한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다보면 이게 진짜 인생의 십자가 길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갑자기 주님과 성서의 인물들이 생활했던 그 땅이 그리워서 두서없이 몇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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