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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사랑, 잘못을 보기보다 고통을 보는

by 세포네 202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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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병자가 있는데 어떤 것이 더 사랑입니까?

얼마나 아프냐고 위로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희망을 건네는 것입니까?

아니면 병의 상태와 원인을 정확히 알려주고 더 나아가 고쳐주는 겁니까?

 

병자에게 제일 필요한 사람은 의사입니까, 간호사입니까, 간병인입니까,

병문안을 자주 가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서로 병을 고쳐주는 사람, 곧 의사가 되어야 하는데

육체의 병은 고쳐주겠다고 하면 환자들이 환영합니다.

병의 원인이 뭔지 잘 알고 치료 방법까지 제시하면

너무도 고마워하며 그런 사람을 명의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심리적인 병이나 정신적인 병은 숨기려고 하고,

그 병을 고치자고 하면 부정을 하거나 불쾌해합니다.

그밖에도 성격이나 인격적인 결함과 영적인 병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더 숨기려고 하고 그래서 더 고쳐주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죄와 잘못에 대한 공동책임을 얘기합니다.

말하자면 누구 한 사람이 잘못해도 우리 모두 공범이라는 얘기이고,

그래서 그것을 반드시 같이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저희 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들 대부분이 그랬지요.

형제 중에 누구 하나가 잘못을 하면 같이 매를 댔고 벌을 줬지요.

형제나 동생의 잘못할 때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고 공동책임을 묻는 겁니다.

 

정말 형제라면 그리고 정말 사랑한다면

한 사람의 죄와 잘못이 그의 죄와 잘못일 수만 없습니다.

같이 아프고 안타깝고 그래서 힘들어도 지적을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 사랑이 있다면 우리도 잘못에 대해 충고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문제는 충고해주는 것을 꺼리는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앞서 봤듯이 상대가 그 충고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이나 태도도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육신의 병은 우리 모두 병으로 인정하고 동병상련하며,

그래서 병은 자랑해야 한다는 공감대까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병부터는 그것을 병이 아니라 죄나 잘못으로 여기고,

그래서 같이 아파하거나 안타까워하기보다는 흉보거나 고치라고 요구합니다.

 

사실 우리의 많은 죄나 잘못들이 이런 병들에서 비롯된 것,

곧 병의 증상들이고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것들이며

그래서 의사가 필요한 병들 또는 병 증상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못하기에 의사가 못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들의 게으름이나 무기력함을 보지

게으름과 무기력함의 뿌리인 그들의 병들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병과 병으로 인한 그들의 고통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그들의 죄와 잘못만 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데 실패하고,

그들의 잘못이나 죄를 보기보다 그들의 고통을 보자고

매년 결심하고 매번 결심하지만 매년 실패하고 매번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웃의 죄나 잘못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나 태도에 있어서

더 큰 문제는 신앙인의 시선이나 자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곧 우리의 충고와 교정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야 하고,

오늘 에제키엘서 말씀처럼 하느님의 충고와 교정을 대신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종종 충고가 사랑의 충고가 아닌 불만의 토로이고,

충고일지라도 그 충고가 인간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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