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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2400

첫 번째로 선택 받은 사람,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베사이다 출신으로 시몬 베드로와 형제다. 안드레아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그가 스승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마침 그 옆을 지나갔다. 이를 본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라고 말했다. 순간 안드레아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는 요한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따라옵니까?” 그러자 요한은 “선생님, 선생님이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을 찬찬히 살핀 후에 나지막이 말했다. “와서 보시오. 나와 함께 갑시다.”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때는 네 시쯤이었다. 도착한 곳.. 2006. 2. 17.
교회의 반석, 사람낚는 어부 베드로 나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던 어부였습니다. 나는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나이였죠. 아는 것이라곤 그물질하는 것뿐이고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무식하다면 무식한 사람이었죠.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난 것은 바람이 심하던 어느 봄날이었죠. 호숫가에서 내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셔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분은 한눈에 보아도 우리와 달리 상당한 품위가 있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안녕들 하시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며칠째 고기를 잡지 못해 마음이 몹시 어두웠던 나는 퉁명스럽게 툭 뱉었습니다. “보면 모르시오. 눈은 장식품이오?” 오히려 그분은 빙그레 웃으시며 나직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006. 2. 17.
영원한 물을 찾은 사마리아여인 옛날 유다 나라는 지금의 팔레스타인보다는 크지만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전체 면적도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넓이에 불과하다. 예수님 시대에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 지방이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방인 지역이라 알고 있는 사마리아도 본래는 유다 땅이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사마리아를 끔찍히 싫어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원전(BC) 720년께 이스라엘의 북쪽인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에 의해 침략을 당했고 후에는 바빌론에 의해 남쪽 유다 왕국도 멸망했다. 이때 앗시리아는 식민지 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즉, 피를 섞이게 해서 민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무서운 정책이었다. 이후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피가 섞이게 됐다. 그래.. 2006. 2. 17.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캐오 자캐오는 세리였다. 세리란 유다인 사회에서는 배척을 받는 직업이었다. 세리들은 유다인들에게 두배 내지 세배의 세금을 징수하는 등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로마제국의 앞잡이와 같은 일을 하는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왕따’를 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그들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다. 겉으로는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을 했다. “저 세리, 로마의 앞잡이, 이방인과 같은 개 같은 놈이 지나간다. 야 소금 뿌려라!” 유다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부르곤 했다. 자캐오도 돈을 많이 벌고 호의호식했지만 마음속에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양심의 소리를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겐 돈과 재물보다도 중요한 것이 많다... 2006. 2. 17.
예수의 외할머니, 안나 나의 이름은 안나. 나의 남편은 요아킴이고 우린 나자렛 근처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지요. 우리 부부는 아주 늘그막에 딸을 얻었답니다. 그 딸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었다고 우린 믿었어요. 그래서 그 애의 이름도 히브리어로 미리암, 즉 마리아라고 지었어요. ‘높여진 자’란 뜻이지요. 늦게 얻은 딸이라 우리 부부는 무척 그 아이를 사랑했지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엇보다도 착하고 심성이 고운 아이였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그 아이는 정말 곱게 자라주었어요. 부모의 말에 늘 순종하고 사려 깊고 겸손했습니다. 신앙심도 무척 깊은 아이였지요. 마리아가 결혼 할 나이가 되어 직업이 목수인 요셉이라는 청년과 정혼을 했어요. 우리는 곧 있을 결혼을 준비중이었지요.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던 어느 날이.. 2006. 2. 17.
의로운 사람 요셉 요셉은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마당으로 나왔다.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마치 이마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요셉은 얼마 전 아는 이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셉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마치 혼이 달아난 느낌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부정을 해봤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착하고 얌전한 약혼자, 마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요셉은 다윗 자손의 신앙심 깊은 가문의 의로운 사람이었다. 요셉의 아버지는 성조 요셉의 깊은 믿음과.. 2006. 2. 17.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 우리 신앙의 어머니로 공경 어느 날 유다 산골, 나자렛이란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느닷없이 나타난 광경에 처녀 마리아는 몹시 놀라 뒤로 넘어졌다. 마리아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무슨 소리이신지….” 간신히 몇마디 하는 마리아를 향해 천사는 거침없이 말문을 열었다. “마리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 곧 아이를 가질 것이다.” “네, 아이를 갖는다고요. 저는 정혼한 사람은 있지만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말이 안됩니다.” “말이 안된다고?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지 벌써 반년이.. 2006. 2. 17.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처럼 당시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인물도 드물다.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그야말로 희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암흑기였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세례자 요한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으며 마지막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철저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비극의 인물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사제인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늦둥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인척이며 약 반년정도 먼저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요한이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그의 말과 행동은 모든 .. 2006. 2. 17.
구원의 노래를 부른 즈가리야 유다 왕 헤로데 시대에 즈가리야라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모두 모세의 형 아론의 후예로 이른바 뼈대 있는 제사장 출신의 후손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였던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계명과 규율을 나무랄 데 없이 지키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두사람 사이에는 불행히도 아이가 없었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아이를 낳지 못해 조상님께 죄를 지어서….” “아니오. 그게 어디 당신 탓이겠소. 하느님께서 아이를 주지 않으시니 어쩌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하니 그것이면 되었구려.” 말은 그렇게 해도 두 부부는 평생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선하신 하느님 저희 부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희에게 자식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2006. 2. 17.
[대구] 한티성지 박해 때 교우들의 피난처이고 처형지이며 유해가 묻혀 있는 완벽한 순교 성지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행정구역으로는 경상 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에 자리한 한티는 산골 중에서도 깊은 산간이다. 산줄기로 치면 팔공 산괴의 맥에 걸쳐져 있고 해발 600m를 넘는 이 심심 산골은 박해 때 교우들이 .. 2006. 2. 14.
[대전] 공세리 성당 아산만과 삽교천, 서해대교를 바라보며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문의·옥천·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貢稅)창고가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 2006. 2. 14.
[대전] 갈매못 석양놀에 살아나는 순교의 피 충남 대천과 광천 중간 지점에 주포(周浦)가 있고 여기서 서해안을 향해 30리쯤 달리면 바다와 만나게 된다. 충청도 수영(水營)에서도 바닷가로 더 나가 광천만이 깊숙이 흘러 들어간 초입, 서해를 내다보며 자리한 순교 성지 갈매못. 한국 가톨릭 최고의 성지로 꼽을 만한 곳이다. 충남 보령군 오천면 영보리 바닷가에 있는 이 순교 성지는 서해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개발돼 있는 성지라는 점에서 꼭 한번 순례해 볼 만한 곳이다. 특히 일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순교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갈매못은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안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민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회장 등 다섯 명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1845년 조선 .. 2006.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