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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독일 레겐스부르크 상트 엠머람 수도원 레겐스부르크 신앙의 요람이자 주님의 학교 상트 엠머람 수도원 도나우강 건너편 북쪽에서 바라본 레겐스부르크. 레겐스부르크 교구 주교좌 성당인 상트 페터 대성당과 오른쪽에 1146년에 만든 석조다리가 보인다. 상트 엠머람 수도원은 중앙역과 대성당 사이에 있다 독일 바이에른 중심부에 있는 레겐스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입니다. 도시의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기 179년 로마인은 레겐강이 도나우강으로 접어드는 곳에 요새 ‘카스트라 레기나’를 건설했고, 그 후 이곳은 중세 도시로 발전합니다. 레겐스부르크 지명도 여기서 유래하지요. 특히 레겐스부르크는 739년 성 보니파시오에 의해 바이에른에서 처음 교구가 설립되어, 초창기 교구와 수도원이 함께 그리스도 신앙을 꽃피.. 2025. 3. 23.
(19) 초대 교회 성장의 장애물들 황제 숭배와 밀교·미신 성행에 맞서 복음 선포한 교회 사도 시대 교회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성행하던 황제 숭배, 밀교 의식, 가정 내 미신 등 각종 우상 숭배의 유혹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삶으로 증거했다. 사진은 페르가몬 트라야누스 신전 유적. 구글 캡처 예루살렘에서 태동한 그리스도교는 1세기 말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론 시리아·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 일부, 갈리아(프랑스) 남부, 에스파냐 일부까지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교회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이토록 짧은 시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로마 제국이 통일돼 있었고, 둘째,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으며, 셋째, 로마 제국 전역에 깔린 도로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사회 문화.. 2025. 3. 23.
전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다 광양 소학정마을 매화 2025. 3. 16.
대전교구 순교성지 갈매못 순교성지 갈매못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닷가에 있는 성지입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며, 넓고 푸른 바다와 갈매기들이 노니는 모습에 눈을 빼앗기기도 하고, 저녁에는 해넘이의 장엄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곳 갈매못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우리 신앙선조들의 목숨까지 바친 주님을 향한 충직한 믿음과 사랑때문일 것입니다.  갈매못 성지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박해인 병인박해(1866)때 5백 여 명의 신앙선조들이 목숨을 내던진 곳입니다. 목이 잘려 걸려 있던 곳이고, 묻혔던 곳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분들 대부분의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원이 밝혀진 열분 중 다섯 분이 성인품에 오르십니다. '갈매못'은 '갈마연(渴馬淵)'에서 온 말입니다. 즉 '목마른 말에게 .. 2025. 3. 16.
수원교구 죽산성지 죽산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당시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갖은 심문과 고문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하느님을 증거하면서 목숨을 바친 순교성지이다. 여기서 희생되어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이름이 기록된 신자만 해도 24명에 달한다. 24위 가운데는 복자 박경진(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그리고 하느님의 종 8위가 있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IC를 나와 안성 방향으로 300미터정도 가면 ‘죽산성지’라 새겨진 큰 돌을 만난다. 이곳에서 성지까지는 800여 미터. 포졸들에게 잡혀 와 죽산 관아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초주검 된 신자들이 처형터로 향하던 그 길이다. 죽주산성을 마주하는 이곳은 고려 때 원나라 군사가 진을 친 곳이어서 ‘이진(夷陳)터’라 불렸는데, 박해 시기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 2025. 3. 16.
61. 마지막까지도 사랑을 설교했던 사랑의 사도 요한 루벤스의 서울 성북동의 고즈넉한 언덕에 유명한 길상사가 있다. 본래는 대원각(大苑閣)이란 이름의 건물이었다. 주인이었던 김영한 선생은 평생을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 그녀는 20살 때 23살의 청년 시인 백석(白石) 백기연을 만났다. 젊은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서로 똑똑해서 대화도 정말 잘 통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백석의 집안에서 기생(妓生)인 자야를 반기지 않았다. 백석은 자야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도망하기로 했지만 자야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재인 백석의 앞길을 자신 때문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백석은 6·25전쟁 후 사회주의자로 북쪽에 머물며 문학의 꿈을 펼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공산당의 압력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다. 그 소식을 .. 2025. 3. 16.
21. 안중근 토마스 의사 가족과 빌렘 신부 그리고 청계동성당 <중> 사형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성사 베푼 빌렘 신부 성무집행 정지  노르베르트 베버, ‘청계동 안씨 일가 안방’,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노르베르트 베버, ‘청계동 안씨 일가 안방’,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아버지 안태훈이 빌렘 신부에게 세례 요청 안중근(토마스) 의사는 2명의 아버지를 모셨다. 혈육의 아버지 안태훈(베드로)과 영적 아버지 빌렘(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다. 둘은 안 의사의 사상과 신앙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안 의사가 어린 시절부터 문무를 수양하고, 1894년 동학군과 싸우며, 가톨릭 신.. 2025. 3. 16.
19.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셸 수도원 어둠 속 내 안의 빛을 찾는 노르망디 몽생미셸 수도원 몽생미셸섬과 고딕 양식의 몽생미셸 수도원.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사이 거대한 모래톱의 섬으로 높이가 최대 80m에 달한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프랑스 콤포스텔라의 길’의 일부로 루앙에서 시작되어 노르망디 내륙을 통과하는 프랑스 북부 순례길의 종착지다. 출처=shutterstock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해안 근처 작은 섬인 몽생미셸은 전설적인 관광명소로 꼽힙니다. 썰물에는 모래톱으로 연결됐다가 밀물에는 섬으로 바뀌는 곳인데, 노을이 드리운 드넓은 갯벌 위에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섬과 수도원은 천국의 성을 연상시키죠. 매년 관광객 약 400만 명이 이곳을 찾습니다. 몽생미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프랑스 콤포스텔라의 길’의 일.. 2025. 3. 16.
(18) ‘사람의 아들’ 칭호 구원자 예수의 인성을 드러내는 칭호 ‘사람의 아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을 드러내실 때 밝히신 칭호로 주로 자신의 수난과 죽음, 재림, 죄 사함의 권능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다. 초대 교회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주님’과 연결해 메시아의 인성을 강조하는 ‘사람의 아들’ 칭호를 사용하였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 십자가의 길 성경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드러내는 칭호 가운데 ‘주님’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신 칭호입니다. 신약 성경 안에 ‘사람의 아들’이란 말은 오직 예수님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하면서 “보.. 2025. 3. 16.
제주교구 정난주길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신앙 때문에 노비되어 제주로 유배 ‘대정성지’로 단장한 정난주 묘소…13.8㎞ 순례길 끝에는 모슬포성당 자리 대정성지는 제주의 순례길 중 한 곳인 ‘정난주길’의 출발지다. 바다를 접해 걸을 수 있는 형제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산방산과 한라산. 이승환 기자 # 두 살 배기 아들 황경한을 품에 안은 정난주(마리아)가 유배길에 올랐다. 조선의 유배지 중 가장 멀다는, 중한 죄인들만이 보내진다는 제주로 가야 한다. 경기 마재 양반가 정약현의 딸은 이제 대역죄인의 아내이자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가 됐다. 신유박해의 참상을 알리겠다며 배론에서 백서(帛書)를 썼던 남편 황사영(알렉시오)은 중국으로 가던 편지가 발각돼 처형당했다. 당당히 목숨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남편을.. 2025. 3. 9.
60.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오로의 회심 발랑탱 드 불로뉴 ‘1654년 11월 23일 밤의 회심’이라 불리는 파스칼(1623-1662)의 초월적인 체험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는 말을 남긴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39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인류에 남긴 영적 유산은 무척 크다. 파스칼은 11세 때 이미 ‘음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고, 16세 때 유명한 수학 논문을 발표했던 천재였다.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의 전신인 전자계산기를 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회개 사건은 하느님의 세례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 초월적인 체험 이후로 파스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쾌락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완전히 끊고 신앙을 생활의 신조로 삼는 그야말로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심한 후 매우 어렵게 지내.. 2025. 3. 9.
59. 예수님께 베드로를 소개한 동생 안드레아 루벤스 예전에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님과 함께 그리스 성지를 순례할 때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파트라이 지역에 가까워지자, 옆에 앉은 염 추기경님은 많이 상기한 듯 보였고 눈가엔 이슬이 살짝 비쳤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파트라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도시에 들어서자, 곳곳에 많은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안드레아 사도가 스승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고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묶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염 추기경님은 어두운 성당에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말없이 기도하셨다. 밖에 나오면서 평소에는 감정을 잘 안 드러내는 염 추기경은 눈가가 촉촉해져 “여기를 평생에 꼭 한번 오고 싶었어. 이제야 .. 2025.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