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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둘레길 나란히 걷는 경기둘레길 55코스 경기둘레길 55코스는 소사역에서 출발하여 원미산, 산울림청소년수련원, 봉배산, 수렁고개, 능고개, 선사유적공원, 고강동 동네를 지나 오정대공원까지 약 13Km 정도 걷는 코스입니다. 2024. 4. 16.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 경기 평택과 충남 아산을 잇는 아산만방조제를 지나며 올려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구름은 어디 갔나 싶었는데 공세리성당을 들어서며 답을 찾았다. 진입로를 벗 삼아 선 십여 그루 벚나무에 구름이 내려앉았다. 벚꽃 구름 너머 야트막한 언덕은 꽃 잔디가 분홍빛 바다를 이뤘다. 대전교구 공세리성지성당이 봄의 절정 한 가운데서 순례자를 반긴다. 벚꽃이 만개한 공세리성당 입구 성가정상. 사진 이승환 기자 조선의 공세 창고, ‘복음의 창고’로 거듭나다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성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공세리라는 이름도 공세곶 창고지에서 비롯됐다. 이곳이 ‘복음의 창고’로 새로 난 것은 1895년 이.. 2024. 4. 15.
부활삼종기도는 원래 성모찬송이다? 4월 1일 부활삼종기도를 위해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OSV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1년 중 50일 동안 바치는 기도가 있지요. 바로 부활의 기쁨을 가득 담은, 마치 노래와도 같은 기도, 부활삼종기도입니다. 부활삼종기도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기쁨과 즐거움이 담겨 있기에, 예전에는 희락삼종경(喜樂三鐘經)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삼종기도는 무릎을 꿇고 바치는 기도지만, 기쁨을 드러내는 이 기도는 늘 일어서서 바쳐야 합니다. 아무래도 삼종기도(안젤루스) 대신 바치다보니 부활삼종기도는 삼종기도 중 하나라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활삼종기도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기도해.. 2024. 4. 15.
(16) 모세의 대변인 아론 아론, 17세기 러시아정교회 이콘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대목은 미국 역사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위대한 연설로 평가된다. 명연설은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국민을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2004년 7월 미국 보스턴에서 3박4일 동안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치인들은 당원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보통 정치가들의 연설은 지루한데 정치신인 버락 오바마의 연설에는 기립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고 단 몇 분 만에 무명에 가까웠던 오바마는 벼락스타가 되었고.. 2024. 4. 15.
12. 주교품을 받다 1829년 주교품 받아… 박해받고 있는 조선 교회 성모님께 의탁 방콕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내부. 샴대목구 부대목구장이자 갑사의 명의 주교로 임명된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9년 6월 29일 샴대목구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플로랑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교황, 샴대목구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 1829년 5월 8일 방콕에 도착한 서신 꾸러미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 보낸 공동 회람뿐 아니라 레오 12세 교황(재위 1823~1829)이 서명한 3통의 소칙서(Brevis)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샴대목구장인 플로랑 주교에게, 나머지 2개는 저에게 보내온 소칙서였습니다. 레오 12세 교황이 1828년 2월 5일 자로 서명한 칙서들이 그제야 수신인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제게 “브뤼기에르 .. 2024. 4. 15.
11. 조선 선교를 자원하다 북경교구·파리외전 모두 조선 선교 거절… “제가 가겠습니다” 제22대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은 마카오 대표부장 움피에레스 신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직할 선교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를 제안한다. 카펠라리 추기경은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으로 즉위해 조선대목구를 설정한다 포교성성, 북경교구에 조선 사제 파견 요청 교황청 포교성성이 직할 선교 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를 요청한 배경을 좀더 설명하겠습니다. 1818년 1월 6일 북경교구장 수자 사라이바 주교가 마카오에서 선종했습니다. 박해로 북경에 들어가지 못한 교구장 사라이바 주교를 대신해 총대리 포르투갈 라자로회 리베이로 누네스(Ribeiro Nunes, 1767~1826) 신부가 조선 교회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추기경 회의를 .. 2024. 4. 15.
10. 방콕에서 조선 선교 관할 여부 묻는 소식을 듣다 “제가 이 일을 맡고 싶습니다. 제가 조선에 가고 싶습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샴대목구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주교관에 머물며 신학교 교수로, 본당 사목자로, 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선교사로 2년간 활동했다. 1922년 방콕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Kraus, Johansen 1827년 방콕 도착 후 곧바로 선교사로 활동 1827년 6월 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방콕 도착 후 곧바로 선교사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저의 첫 소임으로 신학교 운영을 맡겼습니다. 무엇보다 현지인 사제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입회 전 프랑스 카르카손교구 대신학교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한 바 있어 신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2024. 4. 15.
9. 리고르를 거쳐 방콕에 도착하다 마카오 떠난 지 6개월여 만에 첫 선교 임지 방콕에 도착하다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리고르 임금의 배려로 리고르에서 배를 타고 17일간의 항해 끝에 방콕항에 도착했다. 사진은 플로랑 주교가 거주했던 방콕 차오프라야 강 언저리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 플로랑 주교가 활동하던 당시 성 십자가 성당은 목조 건물이었다. 구글 캡처 리고르 임금 배려로 방콕까지 배로 이동 탈롱(Thalon, 오늘날 파탈룽)에서 마침 순시차 이곳에 온 리고르 왕국의 임금을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300명의 호위병과 후궁 25명을 거닐고 저를 맞았습니다. 리고르 임금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는 것 말고는 훌륭한 분입니다. 호감을 주는 인상이고 선의와 자애가 넘치는 분입니다. 그는 상냥하고 인기가 있으며 외국인들을 반깁니다. 정의를.. 2024. 4. 15.
8. 케다에서 탈롱까지 호위병과 함께 코끼리 타고 밀림 헤쳐가며 탈롱으로 향하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케다에서 가톨릭 신자인 샴 왕국 대사의 도움으로 지역 관장인 리고르 왕자를 만나 스님과 똑같이 환대받았다. 폐허가 된 케다 렘부의 예수 성심 성당. Nutmeg books 페낭 도착 후 행선지 모두 뒤틀어져 1827년 1월 12일 페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한 프랑스인 선장이 타밸(Tavael)과 미얀마 남부 지역인 메르기(Mergui)를 거쳐 저를 샴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페낭의 선교사들은 이 제안을 환영했고 저 역시 동의했습니다. 페낭에 머무는 동안 장 바티스트 부쇼(Jean Baptiste Boucho)ㆍ바르브(Barbe) 신부가 사목하는 토종(Ta.. 2024. 4. 15.
7. 샴대목구로 파견되다 ‘조선 선교’ 마음에 품고 새 선교지 태국 샴대목구로 떠나다 브뤼기에르 신부가 1826년 12월 마카오에서 선교지로 배속받을 당시 샴대목구는 샴과 케다(말레이시아 북서부 지역), 피라, 리고르 왕국의 모든 지역과 라오스 왕국 일부를 관할하고 있었다. 그림은 샴대목구 관할도. 구글 캡처. 동료 선교사 페코 신부 선종으로 임지 변경 저의 선교 임지가 확정됐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 바루델(Jean-Louis Baroudel, 1801~1866) 신부는 제게 샴(태국)으로 떠날 것을 명했습니다. 저는 파리를 떠날 때 코친차이나 선교사로 내정돼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본부에서 파견될 때 장상으로부터 선교 임지를 통보받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처럼 교황 파견 .. 2024. 4. 15.
6. 마카오에 체류하다 조선 교우 성직자 영입 운동에 감복… “조선 선교는 저의 운명” 프란치스코 샤싱 주교. 1826년 10월 브뤼기에르 주교가 마카오에 도착했을 당시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1826년 10월 중순 마카오에 도착하다 저는 1826년 10월 중순 마카오에 도착했습니다. 포르투갈 선교 보호권 아래 있던 마카오교구는 작은 형제회 출신 프란치스코 샤싱(Francisco de Nossa Senhora da Luz Chacim) 주교가 1804년부터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또 포르투갈에서 파견된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회, 예수회, 라자로회 수도자들이 사목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카오에는 교황청 포교성성 대표부와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부, 프랑스 라자로회 선교사들의 거주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움피.. 2024. 4. 15.
5. 선교 보호권과 교황청 포교성성 스페인·포르투갈 선교 보호권 악용 폐단 없애려 포교성성 신설 교황 파견 선교 사제 브뤼기에르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넉 달 보름 동안 선교사 양성 교육을 받은 후 1826년 2월 5일 선교지인 코친차이나를 향해 출항했다. 샤를르 쿠베르탱, ‘출발’, 1868,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이 그림은 쿠베르탱이 성 브르트니에르, 도리, 볼리외, 위앵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고 자신이 참석했던 1864년 7월 15일 거행된 이들 교황 파견 선교 사제들의 파견식을 회상해 그린 작품이다 선교사 양성 교육 받고 선교지로 향하다 저는 1825년 9월 17일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해 넉 달 보름 동안 선교사 양성 교육을 받은 후 교황 파견 선교 사제로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1826년 2월 5일 보르도 항에서 선교지 코..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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