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교파 초월한 공동 협력의 결실”
“성경 공동번역 - 전국일치위서 논의
전국 일치위원회 제2차 회합이 주교관 회의실에서 4월 26일 위원장 황주교님의 사회로 개최됐는데, 금년 6월에 내한키로 된 성청 일치 사무국 총무 틸레브란트 대주교의 방한이 내년으로 연기됨에 따라 회의소집 의도와는 달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논의했다....
프로테스탄과의 성경 공동 번역을 주교단과 성경위원회에 건의. 이날 회합에 참석한 위원은 위원장 황주교 이하 김남수 신부, 백남익 신부, 나상조 신부, 길로연 신부, 노다니엘 신부, 박도식 신부, 김몽은 신부, 노세현 신부 하 안토니오 신부와 그 외 불란서 신부 1명이다.” (가톨릭시보 1967년 5월 7일자 3면 중에서)
가톨릭-개신교간 일치운동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운동이 유례없이 왕성하던 60년대말에서 70년대 한국 그리스도교는 세계 교회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신?구약 공동번역 성서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 역사적인 공동번역 성서의 발간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리를 훨씬 더 가깝게 해주었고 이후 70년대와 80년대 사회운동 현장에서의 만남을 더욱 원활하게 해주었다.
물론 공동번역 성서는 그 번역 자체가 안고 있던 문제점과 함께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 공동번역 성서를 수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부분적으로 의미가 퇴색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일치운동에서의 의미와 중요성은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공동번역 성서의 발간이 논의된 1967년 이후 양 교회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고 1971년에는 신약 공동번역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공동번역본 인기리 시판
“한국 기독교 2백년 사상 가톨릭과 개신교 양 교회가 공동으로 이룬 사업 중 가장 뜻있는 일로 평가되어온 성서공동번역사업이 착수 2년만에 결실을 보아 신약공동번역본이 3일 출간, 첫선을 보였다.
69년 1월 양교회 성서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번역전문위원회’가 번역에 착수한지 2년 3개월만에 출간을 본 공동번역본은 대한성서공회 발행으로 시판에 들어가자마자 공동번역본에 큰 기대를 걸어온 기독교인과 일산 시민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 속에 판매되고 있다.” (가톨릭시보 1971년 4월11일자 3면 중에서)
가톨릭시보는 개신교와의 일치운동의 일환으로 시도된 공동번역 성서의 첫 열매인 신약공동번역의 출간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한다.
‘쉬운 성서’는 시대적 요구
“이로써 한국은 66년 바티칸과 세계성서공회 연합회가 공동번역을 각국에서 추진키로 한지 4년만에 영국 불란서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공동번역을 완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번 신약의 출간으로 첫 결실을 본 한국의 성서공동번역 사업은 공동번역의 세계적인 추세에 힘입은바 크지만 국내적으론 종래의 난해한 번역본이 기독교인 외엔 일반 대중에 어필하지 못했고 더욱이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진리에 접해야할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 당해 온 실정을 절감한 나머지 모든 이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성서를 공급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서 비롯된 사업으로 교파를 초월한 공동협조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가톨릭시보 1971년 4월11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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