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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14) 1963년 수원교구 서울대교구로부터 분할

by 세포네 2006. 8. 27.

 

경기 남부지역 발전 예상
24개 본당 수원교구 탄생

“서울특별시, 한강이북 관장하는 ‘首都座’의 面目 갖추어
서울 특별시를 제외한 한강 이남의 경기도내 24개 본당을 관할하는 수원교구가 창설되었다. 서울대교구 관할하에 있던 동 지역에 새 교구가 탄생되면서 그 초대 교구장에는 천주교 중앙협의회 사무장 빅또리노 윤신부가 임명되어 곧 주교위에 서게 된다. 이번 수원교구의 창설을 보게 된 것을 계기로 서울대교구는 그 관할 구역을 서울특별시내만으로 하는 명실공히 수도좌대교구의 면목을 갖추게 되었다.”(가톨릭시보 1963년 10월 20일자 1면 중에서)

교구 분할, 설정에 박차

서울대교구는 매머드급 교구로 여러 차례의 교구 분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목 관할 구역이 매우 넓었다. 여기에 경기도 남부 지역의 교회 발전이 예상됨에 따라 이 지역에서 사목하고 있던 성직자들은 1962년에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에게 교구 분할을 건의했고, 이듬해에는 주한 교황 사절 주디체 대주교가 수원 지역 시찰에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1963년 10월 7일자로 교황 바오로 6세는 수원교구를 서울대교구에서 분리해 한국인 성직자 교구로 설정함과 동시에 윤공희 신부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했으며, 고등동본당을 주교좌로 설정했다. 주디체 대주교는 12일 이같은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윤공희 신부는 그 해 10월 20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사목 표어로 주교 서품식을 하고 돌아온 뒤 12월 21일 착좌식을 가졌으며 이듬해 1월 12일 장금구 신부를 초대 총대리로 임명했다.

한국교회는 이미 1962년 3월 10일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한국 교회의 자립능력을 인정받고 정식 교계 제도를 설정한 바 있다. 이때 당시 한국에는 서울, 대구, 광주 대교구가 설정됐고 이들을 중심으로 3개 관구가 설정됨으로써 13개 대목구가 정식으로 교구로 승격된 바 있다.

이후 한국교회에는 수원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된데 이어 1965년에는 원주교구가 춘천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됐고 초대 교구장에 지학순 신부가 임명됐다.

그 이듬해인 1966년에는 마산교구가, 1969년에는 안동교구가 대구대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됐으며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두봉 신부가 초대 교구장에 임명됐다.

이어 1971년에는 제주교구, 1989년에는 군종교구가 설정됐으며 가장 최근인 2004년에는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리, 설정됐다.

교구 신설은 교회 발전 의미

가톨릭시보는 1963년 10월 20일자 1면 기사에서 수원교구의 창설 소식과 이후 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서울대교구 신인식 부주교의 말을 인용해 “본당이나 교구가 신설되는 것은 교회의 큰 발전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번 서울대교구에서 독립된 수원교구도 앞으로 많은 발전을 기대하는 바”라고 말했다.

기사는 이어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윤주교에 대해서도 “그의 성품이나 그분이 하신 행적들을 보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분이니 우리들은 수원교구의 발전을 위해 많은 기구를 드릴 분”이라고 전했다.

한편 같은 지면의 ‘反射鏡’이라는 코너에서는 38세로 주교로 임명된 윤주교에 대해 언급하며 “이제 한국인으로서 여덟 번째 주교요 당당한 한국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크게는 가톨릭 교회의 주교위에 서게 된 것”이며 “젊은 신학박사요 본당 경력과 교회 출판에도 정통한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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