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구약성서의 인물들'을 마치며

by 세포네 2006. 4. 23.

역사는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는 인간의 기억이라 한다.

 

과거는 기억이라는 인간의 지성작용을 통해 현재 속에서 다시 재현된다. 그 재현 속에서 과거는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며 의미를 지닌다. 과거는 지난 것이고 다시 만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 녹아있는 분명한 삶의 흔적이며 영향을 주고있는 실체다. 구약성서 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건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돌아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분명히 과거의 역사 속에, 그리고 성서 속에 실존했던 인물을 오늘의 시간에 다시 생각하고 그려보는 건 흥미있고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그 인물들의 인간적인 매력은 우리의 시선을 과거의 역사를 넘어서 오늘과 합치하고 있는 그 무엇을 선사해준다. 지난날 교리시간에 선생님들의 강의를 통해, 때로는 영화나 글 속에서 단편적으로 들어보았던 성서의 인물들을 다시 재현해 봄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긴 인물의 여행은 나에겐 그야말로 은총의 시간이었다. 성서를 구석구석 꼼꼼히 읽어보고 관련서적 등을 들쳐보고, 때로는 긴 시간을 그분들을 생각하며 지내는 동안 가끔은 시공을 초월한 만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얼굴 모습은 어떠했을까? 라헬은 얼마나 고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을까? 생각과 상상을 통해 만난 구약의 인물들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약성서의 인물들은 결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 속에 살아있는 인물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성서의 인물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울고 웃고 분노하고 때로는 죄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들이라 하더라도 죄와 어둠의 구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던 건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우리가 길을 나서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인간 모습이 바로 성서의 인물이었다.

 

사실 성서의 인물들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나 유사한 아니 똑같은 많은 공통점들은 인간이라는 연대성 안에서이다. 인간이라는 한계상황, 부족함, 죄스러움, 욕심과 좌절, 불신과 실패 등 부정적인 부분을 포함한 모든 점에서 과거와 현재는 너무 변한 게 없다.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도 정신의 발전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성서의 인물들을 그려보면서 또 한가지 내가 살아온 역사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는 인물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스치듯 지나쳤던 만남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나의 삶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사람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만남을 추억하는 것도 은총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만남은 기억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내 안에서 현재화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없다. 성서의 인물들의 삶도, 나와 내 부모 형제들의 삶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삶은 드라마틱하다. 몇 권의 책으로도 몇 십편의 영화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삶의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써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의 인물들의 삶과 역사에는 분명하게 공통점이 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처럼 어둡고 힘든 시련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것은 믿음의 끈이었다. 죄와 악행 속에서도 버리지 않은 것은 마지막 희망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서의 인물은 위대하고 거룩한 인물이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 특히 전화나 글로 위로해주신 분들께도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좋은 그림을 골라주는 친구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새로 만나게 될 신약성서의 인물들도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아담에서 말라기까지.'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허영엽 신부가 1999년 5월 23일부터 2000년 10월 22일까지 연재해온 '성서의 인물'구약편이 완결됐다. '아담, 카인, 요셉, 모세, 여호수아…' 총 70명에 이르는 구약성서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걸린 시간은 1년6개월여. 집필 원고 분량만 800장에 달하다.

 

구약성서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 '성서의 인물'은 '인물 중심으로 읽는 구약성서'라는 새로운 성서 접근법을 제시했다. 특히 허 신부는 '술주정꾼 노아''거짓말쟁이 아브라함' 등 다양한 인물 해석을 통해 성서 속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평을 얻고 있다.

 

허 신부는 구약편을 마감하면서 "일반 독자들이 성서의 인물들을 친근감 있게 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신약편에서도 독자들의 성서이해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