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어떤 삶이 ‘인간의 완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교에서는 ‘더불어 함께’의 길을 택합니다. 성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模像)을 지녔다고 얘기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성은 ‘삼위일체’로 드러납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풍요로운 나눔과 친교가 하느님의 본모습입니다. 이들 세 위격(位格)이 각각 서로에게 ‘너’(=삼위)이면서 동시에 ‘나’(=일체)라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서로 ‘너’이면서 ‘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연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 나눔, 친교, 사랑의 연대를 본성으로 하는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이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요, 너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격의 완성에 이르는 길도 ‘더불어 함께’의 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자(聖者)가 되기 위해 ‘입산수도’, ‘면벽수행’이 아닌 ‘이웃 사랑’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은수자(隱修者)들이 있었고 수도 생활(修道生活)의 전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류가 ‘공동체 생활’과 ‘이웃 사랑’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철학자들도 인간이 ‘이웃’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양하게 밝혀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간은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계 내 존재’(Sein in der Welt)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뜻은 인간은 ‘세상과 더불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끔 되어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언제나 함께하는 실존(Koexistenz, 공동실존), 함께하는 존재(Mitsein, 동료존재)입니다. 공동체와 단절된 채 ‘나’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그리고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간의 특성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인 것입니다.
또한 마틴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의 철학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나’는 ‘너’를 통해서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결국 인간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살아가고 ‘완성’에로 나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문제를 골똘히 사색해온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여러 관점에서 논증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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