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가르침의 목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두 가지 뛰어난 안목을 내포합니다.
첫째,
실행을 강조하셨습니다. 앎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을 중히 여긴 예수님께서는 그 가르침 끝에 명시적(明示的)으로(마태 25,13; 마르
9,50; 루가 6,36; 10,37; 요한 8,11 등 참조) 혹은 암시적(暗示的)으로(마태 17,24; 마르 3,35; 10,44; 루가
12,40 등 참조) 배운 것을 행하도록 자주 권고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특별한 노력으로 교육시킨 제자들을 파견하여 그들이 배운 바를
실행하도록 했습니다(루가 9,1-6; 10,1-2 참조).
율법학자들의 탁상공론을 타파하고 삶의 ‘변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서학(西學)의 이름으로 천주교회가 한국에 전파되었을 당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치우친 유교의 폐단을 안타까워하던
신진 유학자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쳐먹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實學)을 추구하는 동기를 제공한 바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100회 이상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르침의 주안점은 단순한 선포가 아니라 그 하느님 나라에 사람들을 동참(同參)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준비와 회개, 변화된
삶에 주안점을 두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을 적극 지지하면서 회개를 행실(行實)로 보여야 한다고 역설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루가 3,8).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걸고 아무리
그럴듯한 일을 많이 하고 다녀도 ‘아버지의 뜻’을 실행치 않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차가왔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루가 12,9
참조).
둘째, 인간의 ‘숙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는 체념과 좌절의 늪에서 한평생을 신세타령하며 살아야 하는
모든 인생 낙오자들과 죄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념이었습니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주기를 청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여 줄 기적은 요나의 기적밖에 없다”(마태 16,4). 이는 바로 구제 불능의 죄인들이 회개하여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적이었습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람을 바뀌게 하는 것처럼 큰 기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숙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그것을 듣는 이로 하여금 ‘지금 여기서’
전인격적으로 변화하길 촉구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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