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사도신경이야기

만남

by 세포네 2006. 2. 20.

 성서를 통틀어 가장 짧게, 가장 많은 것을, 가장 맛있게 얘기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요한 1,37-41입니다. 안드레아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는 첫 번째 상봉의 장면입니다. 이 두 청년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조용히 예수님의 뒤를 따라나섭니다. 인기척을 느낀 예수님이 뒤를 돌아 물으십니다.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요한 1,38).
두 청년이 물음으로 답합니다.
“랍비,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요한 1,38).
예수님이 화답합니다.
“와서 보라”(요한 1,39).
두 청년은 예수님을 따라가 딱 한나절 오후 4시까지 함께 머뭅니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형 시몬 베드로에게 가서 말해 줍니다.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
이게 전부입니다. 붙이지도 않았고 빼지도 않았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두 청년이 웬 낯선 분을 만나서 그가 ‘메시아’임을 알아봤다는 엄청난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평생 걸려도 불가능한 일이 여기 이 몇 문장으로 표현되었듯이 ‘하루 한나절’에 전개된 사건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묻고 답하는 말이 불교의 선문답(禪問答)을 넘어서는 경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문을 여십니다.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에 두 청년은 세례자 요한이 이러저러하게 말하더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뭐하는 분이십니까라고 묻지도 않습니다. “랍비,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참 여운이 있는 질문입니다. 제자 될 자격이 있는 질문입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은 “와서 보라” 하십니다. 기막힌 화답입니다. 내가 사는 곳은 알아서 뭐 할려구?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데? 이런 식으로 되묻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저 두 청년의 물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와서 보라! 너희가 찾고 있는 것이 내 안에 있는지! 내 마음에 들어와서 보라! 집에 가서 물 한 잔 줄 터이니 쉬엄쉬엄 들어와서 보라! 그리고 두 청년은 예수님 안에서 ‘메시아’를 만납니다.
거의 무언(無言)에 가까운 이 만남, 그 안에 놀라운 가르침이 깃들어 있습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교회와 영성] > 사도신경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분만의 교육 원리가 있었다 1  (0) 2006.02.20
위대한 스승 1  (0) 2006.02.20
처형  (0) 2006.02.20
음모  (0) 2006.02.20
논쟁  (0) 2006.02.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