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공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이후 주로 무엇을 하셨는지를 다음의 성구는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마태
9,35).
이처럼 예수님은 ‘가르침’과 ‘행함’으로 구원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필요하다면 기적도
불사하셨습니다. 예수의 기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치유 기적입니다. 둘째, 구마 기적입니다. 셋째, 자연 기적입니다. 넷째,
음식 기적입니다. 다섯째, 구원 기적입니다.
예수는 당신을 과시(誇示)하기 위해 기적을 행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의 형제들이 “당신의
능력을 세상에 마음껏 과시하시오”라는 부탁을 했을 때나(요한 7,3-5 참조),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를 태워버리자”고 제자들이 요청했을
때(루가 9,51-56 참조) 그리고 바리사이의 기적 요구(마르 8,11-13 참조)에도 그는 분명히 거절했습니다.
예수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할 때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의 간절한
바람과 믿음이 있을 때(마르 5,21-43) 치유해 주셨고(마르 6,53-56), 하느님의 ‘뜻’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 때에 마귀를
쫓아내셨고(마르 1,21-28) 오천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마르 6,30-44).
예수가 기적을 행하도록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 곧
연민(compassion)이었습니다. 예수는 연민이 많으신 사람이었습니다. ‘연민’, ‘자비’, ‘동정’ 이런 말들은 실상 예수를 움직이고 있던
감정들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약합니다. 이를 표현하는 히브리어의 단어 ‘라함’은 본래 애(창자, 내장, 심장)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강한 감정의
근원으로서의 인간의 내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있는 예수가 ‘측은히 여겼다’는 류의 표현은 바로 인간의 ‘애간장’에서 일어나는
반응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충심에서 우러나는 공감이요 착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연민인 것입니다.
이
‘연민’이 병자들과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로하시며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예수를 내몰았던 것입니다. 이 연민으로 나인 고을에서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하고 위로”(루가 7,13)하시며 죽은 아들을 다시 일으켜주시고 죽음의 형벌이라고 불리며
격리된 나병 환자(마르 1,41)들과도 거리낌 없이 마주하셨습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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