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6일 동안 하신 일마다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좋았다’는 말씀은 단지 그래서 기쁘다는
감상이 아니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조화롭게, 본래의 목적에 맞게 존재하라고 ‘축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으로써 “모쪼록 처음과
같이 영원히 존재하거라”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발(發)하신 태초의 축복입니다. 이는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피조물이 갖는 각각의 고유성(특징과 임무), 선성, 완전성을 보증하십니다. 곧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 선하고 완전하다고 선언하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세상의 악함, 인간의 타락은 하느님에 연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초의 창조에는 결함이 없기 때문에 죄와 타락의 원인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남용한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현실적인 좌절, 죄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근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의 축복 의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목적으로 창조하셨고, 역사를 절망, 어둠, 질곡 속에서도 마침내 당신이 뜻하신 목표를 향하여 이끄십니다. 그 축복의 파장은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에 스며 있고 또 스며 있을 것입니다.
이 축복의 절정에 인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4.10.12.18.21)는 말씀이 인간의 창조를 마친 후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는 최상급의 찬탄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하느님의 만족과 축복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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