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활동과 처신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일부 계층에게는 환영받았지만 일부 다른 계층에게는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안으로 여러 계층들의 갈등과 야합의 구도 속에 있었습니다.
첫째,
젤로데(열성파) 당원들이 있었습니다. ‘열성당원’이라 불리기도 하던 이들은 민족의 해방과 국가의 독립을 위해 지하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때때로 여러 패로 갈라지거나 신생 단체와 제휴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투철한 종교적 열성으로 폭동을 일으키거나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60여 년 동안 로마 점령군을 괴롭혔습니다.
둘째, ‘분리된 자’라는 뜻의 바리사이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과 자신들을 ‘분리하여’ 자신들만의 폐쇄 집단을 이루었습니다. BC 2세기경 바리사이파 6천 명은 황제에 대한 충성 서약에 서명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이스라엘 자체의 개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율법을 준수하는 자만 사랑하신다고 믿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벌을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이 강한 이스라엘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엄격히 준수하는 이 사람들의
지명도는 대단히 높았습니다.
셋째, 엣세네파가
있었습니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점으로 말하면 바리사이보다 한결 더했던 엣세네파는 완전히 사회와 절연하고 사막에서 노숙하면서 독신,
금욕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사악한 세상의 오염에 대해 크게 경계하였고, 정결례를 나날이 준행했습니다. 바깥 사람들은 모조리
‘어둠의 자식들’로 여겨 미워했고 자신들만이 구원될 충실한 ‘남은 자’, 곧 ‘빛의 아들들’로 여겼습니다.
넷째,
사두가이파가 있었습니다. 사제의 직분을 맡고 있는 사두가이파는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가장 오랜 히브리 전통을 고수했고 믿음과 예식의
새로운 요소들은 무엇이나 배격했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을 전통에 없는 새로운 요소로 여겨 배격했으며, 상벌은 현세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협력하면서 현상 유지에 애쓰는 우익이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 계급의 제관장들과 원로들이었습니다.
다섯째,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암하아렛츠’ 곧 ‘땅의 백성들’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소외받고 괄시받던 밑바닥
인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성서에서 예수를 따라다니던 ‘군중’들로 표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대하는 각 분파의 태도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열성당원들은 군중을 움직이는 예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반면, 사두가이파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 행사에 일침을 놓는 예수가 눈의 가시였습니다. 바리사이파에게도 시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율법 해석과 하층민인 백성들의 편이 되어주며 천한 이들, 죄인들과 함께하는 예수의 언행(言行)이 못마땅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이들 기득권층들에게 예수는 없애야 할 존재, 반대의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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