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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사도신경이야기

과연 성서의 창조론은 빅뱅 이론을 수용할 수 있는가?

by 세포네 2006. 2. 20.

 지금까지 밝혀진 성서학의 정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서 전체의 관심은 철저하게 ‘왜?’에 있었지 ‘어떻게?’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왜’를 물었습니다.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를 ‘히브리적 사유’라고 합니다. 반면에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를 물었습니다.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인간은 어떻게 구성된 존재인가? 국가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이를 ‘희랍적 사유’라고 합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도 히브리적 사고 방식을 기반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기원이 하느님의 창조에 있다는 사실만 선언할 뿐 ‘어떻게 창조되었는가’라는 과학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6일 간의 창조에 대한 기록 역시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창조의 ‘질서’ 곧 왜 인간이 창조계의 절정에 놓여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창조의 경위에 대해서는 창세 1,1의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는 선언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진술이 전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중략)
결국 이 말은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신학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어떻게 창조했는가 하는 과학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대폭발(Big Bang)에 의해 우주가 생겨났을 개연성이 크다면 그것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대폭발 자체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창조 의지에 기인한 창조의 역사(役事)라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만은 확고합니다.
둘째, ‘한 처음에’(in the beginning)라는 창세기 첫머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처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브레쉬트’는 무엇의 ‘처음(시작, 원리)에’라는 의미입니다. 성서학적으로는 이 단어가 ‘절대적 시작’을 말한다고 보는 입장도 있고 또 시간의 어느 시점에 개입하는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이사 43,1-15 참조)를 강조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결국, 브레쉬트는 하늘과 땅의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과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을 선포한다고 종합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작이라는 것이 ‘시간’의 시작만을 의미할 뿐 아니라 동시에 ‘공간’의 시작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 이야기가 빅뱅 이론과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가톨릭신자는 무엇을 믿는가」1권, 194-196쪽 참조)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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