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모든 속성을 총괄적으로 표현해 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전능하심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하느님께만
속하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내포합니다.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이 다음의 시편 구절입니다. “그 옛날부터 든든히 다지신 이
땅이, 손수 만드신 저 하늘들이 사라질지라도 하느님은 그대로 계시옵니다. 옷처럼 모든 것이 삭아 빠져도 갈아입는 헌옷처럼 모든 것이 바뀌어도
하느님은 언제나 같으신 분,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영원히 계시옵니다”(시편 102,25-27). (중략)
둘째로,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내포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현재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속한 일까지도 철저히 또 완벽하게 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부터 장차 있을 일을 일러주고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미리 알려준 자, 나밖에 없다. ‘무엇이든지 내 뜻대로 된다. 나는 결심한 것은
이루고야 만다’고 주장할 자, 나밖에 없다”(이사 46,10). (중략)
셋째로, 하느님의 ‘편재(遍在)하심’을 내포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무소부재(無所不在), 곧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없다’란 말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속성을 편재성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우주에 충만하시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 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시편 139,7 -10). (중략)
넷째로, 하느님의
‘정의’(正義, 라: Justitia)를 내포합니다. 정의를 공의(公義) 라고도 부릅니다. 공의는 ‘각자에게 줄 것을 주는
것’(라: cuique suum)을 뜻합니다. 곧 선을 행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상선벌악’의 분배 정의라 부릅니다. (중략)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전능하신’이라는 표현은 이들 모든 속성들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기에 영원하시고, 전지하시고, 두루 계시고, 정의로우시고, 선하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역으로
그러하시기에 전능하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기는 이 전능하심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욥기 42,2).
이러한 고백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고백은 고백하는 이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과 섭리에 대해 굳게 신뢰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를 고백하는 사람은 삶의 짐을 지고 끙끙대며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169-171)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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