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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가톨릭교리

낙태

by 세포네 2005. 10. 24.

○ 질문 : 어릴 때부터 함께 성당에 다닌 사촌 여동생이 얼마 전에 결혼해 임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병원을 찾았다가 뱃속의 아이가 기형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촌 여동생은 자신과 장차 태어날 아이의 장래를 위해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싶어 합니다. 교회는 이런 경우에도 낙태를 금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서울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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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아이라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세르비아인 병사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한 보스니아인 수녀 루치베트루스가 총장 수녀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1994년 카이로에서 열린 인구조절 회의에 마더 데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전세계가 파괴와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살인하는 낙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일 키울 수 없는 아이라면 죽이지 말고 저를 주십시오. 제가 키우겠습니다.”

‘기형아 낙태’를 포함해 모든 낙태는 용인될 수 없다. 장애를 갖고 살아갈 아이의 장래를 위해 낙태를 한다는 것은 현재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많은 장애인들을 모독하는 말이다.

이미 무사히(?) 태어나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기존 장애인들에게 물어보자. 살겠는가 죽겠는가. 만약 한명이라도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형아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말은 무의미해 진다.

많은 이들이 ‘태아는 내가 생산한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방어해야 하는 권리를 지니기에 기형아 임신의 경우 정당방위 차원에서 낙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내가 생산해 성장한 초등학교 아이도 내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아이가 언제 나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했는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왜 정당방위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물론 기형아 아이를 낳을 경우 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낙태할 경우 당장 그 아이는 ‘죽음’에 이른다. 나의 행복과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큰 가치인가.

영국의 윤리학자 리처드 헤어(Richard M. Hare, 옥스퍼드학파)는 낙태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황금률을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면, 너 역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자문=서울대교구 교회법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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