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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57] 야훼의 날을 선포한 요엘 예언자

by 세포네 2005. 8. 3.

요엘이란 이름은 '야훼는 하느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브두엘의 아들인 요엘이 활동하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특히 자연 재해로 많은 백성들이 고초를 당하고 있었다. 큰 메뚜기떼가 기승을 부려 밭은 메마르고 곡식이 고갈되어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성전에서 드려야하는 제사의식까지도 못할 정도로 식량이 바닥났다. 이스라엘 지방은 본래 메뚜기가 많았다. 메뚜기는 식물을 먹고 사는데 자주 떼를 지어 농작물을 습격해서 먹을 것을 앗아갔다. 메뚜기는 이스라엘 지역의 농부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요엘 시대에도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나무와 풀이 죽어 가축들도 굶어 쓰러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적까지 쳐들어와 백성들은 큰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예언자 요엘은 이 모든 사건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하느님의 섭리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재앙의 원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했다.
“야훼의 말이다.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요엘2,12)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었다. 고통과 재앙의 원인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깨달을 때 비로소 회개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엘은 회개가 외적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진실한 회개이어야 함을 역설했다.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요엘2,13)
요엘은 어느 한 계층이 아니라 범국민적인 회개를 부르짖었다. 제사장, 사제, 장로, 농부 등 모든 백성이 자신의 위치에서 회개해야 징벌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메뚜기떼의 습격을 통해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장차 다가올 야훼의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야훼를 떠난 생활을 반성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했던 것이다. 이제 다가올 야훼의 날은 어둡고 음산하며 짙은 어둠이 깔린 깜깜한 날이라고 하면서 두려운 야훼의 권세를 선포했다. 그런데 야훼는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강조했다.

“주님은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요엘2,13)
요엘은 하느님께서는 회개하고 뉘우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연 재해를 거두어 농작물의 풍성한 수확과 평화 등 야훼의 축복을 약속했다. 야훼의 축복은 우선 현실적인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나 이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너희에게 주리니
너희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다시는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겠다.”(요엘2,19)
또한 야훼의 날에 받게 되는 축복은 영적으로도 풍성하게 내려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그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요엘3,1.3)

요엘은 “야훼의 날”을 소개하는데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에즈라의 개혁 이후 이스라엘은 정치적 안정을 누리게 되었는데 그 체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요엘은 이런 상황이 결정적이 아니며,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결정적인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 메뚜기떼의 침입이 바로 하느님의 역사적 개입이라고 소개했다. 현실의 사건을 하느님의 관계에서 해석했던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정화되었다. 즉, 이 자연재해 후 이스라엘은 내적인 회개를 하게 되고 하느님의 영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천재지변과 자연재해를 겪으며 살아간다. 또한 많은 경우는 인간의 잘못과 실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이 겸손해야 함을 늘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자연재해로부터 많은 인명과 재산을 구해줄 것은 분명하다. 특히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은 이러한 자연적인 사건 속에서도 하느님의 메시지를 찾고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옛날 요엘이 선포한 것처럼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마음과 통회의 눈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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