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58] 정의를 외치는 아모스

by 세포네 2006. 4. 23.

사해 근처인 드고아에서 아모스는 양을 치고 있었다. 어느 날 야훼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모스, 너는 이제부터 내 말을 사람들에게 전해라. 너는 나의 말씀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이해가 안갑니다. 저는 양을 치고 무화과나무를 가꾸어 먹고 사는 무식한 농부입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단 말입니까?"

 

"너는 나의 말을 시키는 대로 전하기만 하면 된다. 네가 말하지만 결국엔 나의 말이다. 알겠느냐?"

 

"어쨌든 알겠습니다만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모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우찌아는 유다를,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당시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과 번영의 시기였다. 물질의 풍요는 정신의 빈곤을 가져오기 쉽듯이 윤리와 사회 기강이 해이해져 있었다.

 

특히 지도자들은 향락에 빠져 있었다. 상아 침상에서 뒹굴고 몸에는 값비싼 향유를 바르고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치를 즐겼다. 사회의 지도층이 썩고 부패하여 향락과 사치에 빠져있자 덩달아 종교도 겉치레의 형식에 치중하여 종교본연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종교는 무릇 사회를 선도하며 선으로 이끌기 위해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세속의 못된 풍랑이 교회를 뒤덮어 더 부패하고 악을 조장하는 사례도 많았다. 그럴 때 교회는 오로지 허울과 형식만 남아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더 나가서 허위와 방탕을 쫓아 교회는 죄를 조장, 방조하는 소굴처럼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거룩한 교회는 악인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악행을 일삼는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겉으로 번지르르한 형식에 매이게 되고 외적인 겉치레에 몰두하여 내적인 힘과 정신은 소멸되기 일쑤다.

 

오늘날의 교회의 형태와 비교할 때 반성해 보아야 할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극성을 부려 부패할수록 서민들은 오히려 더 착취당하고 소외되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가진 자들은 빈민들을 착취하고 유린하여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아모스 예언자는 당시 이스라엘의 위선과 고집에 대해 엄하게 꾸짖고 있다.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고 사흘마다 십분의 일세를 바쳐보아라. 누룩 든 빵을 감사 제물로 살라바치고, 자원제물을 수선스럽게 드려보아라. 너희가 하는 짓이란 고작 그런 것이 아니냐?"(아모 4,4-5)

 

허위와 기만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종교적인 의식을 뻔뻔스럽게 바치고 있는 당시의 종교생활을 꼬집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종교의 정체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너무나 외적인 모습과 발전, 물질적인 풍요에 매달려 내적으로 빈곤해지는 종교의 행태가 없지 않아 자칫 외형과 형식만 남게 되는 종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아모스의 예언은 우선 당시의 지도층, 특히 위정자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사제들은 아모스의 활동에 반감을 품고 모함과 공격을 감행한다.

 

베델의 사제 아마지아는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 아모스를 고소하였다

 

"아모스라 하는 한 촌놈이 와서 이스라엘의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그 자는 이 나라를 망칠 소리만 지껄입니다. 임금님도 칼에 맞아죽고 백성은 적군의 포로가 된다는 망발을 늘어놓아 백성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놈을 없애 주십시오."

 

사제들과 종교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아모스는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개혁의 소리와 건전한 비판이 체제에 대한 도전과 반역행위로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릇 지도자는 귀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현인은 사람을 등용할 때 피해를 무릅쓰고 앞에서 직언을 하는가 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했다고 한다. 아첨과 혀에 발린 소리는 우선 듣기에 좋지만 결국 파멸과 멸망으로 이끄는 유혹임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모스는 실제로 면전에서 심한 모욕과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사제 아마지아는 아모스 면전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예언자라고 사칭하는 이놈아, 여기서 당장 꺼져라. 유다로 가서 예언자 노릇하면서 밥을 빌어먹어라. 여기서는 하느님을 팔아 한마디도 떠들지 말아라."

 

그러나 어떤 공격과 모함에도 아모스는 당당했다.

 

"너희 말대로 난 예언자가 아니다. 양 떼나 몰고 땅파먹고 살던 농부였다. 어느 날 야훼께 잡혀 말씀을 전하게 된 사람이다. 이건 내 뜻이 아니라 야훼의 분부대로 행하는 것이다. 난 욕을 먹어도 박해를 당해도 할 수 없다. 난 단지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할뿐이다."

 

남루하고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담담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는 참된 예언자였다. 그는 특별히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예언자였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도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죄와 벌도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역설했다.

 

아모스는 또 정의를 강조한 예언자였다. 신앙인으로서의 특권은 동시에 사랑의 의무를 지니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비신앙인들 보다 막중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아닌가 싶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