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형 예수성심상과 파티마의 성모상으로 조경돼 있는 성당 앞.
2. 지붕 교체 작업이 한창인 수류성당.
3. 성당 앞마당에 있는 예수성심상.
4. 단순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수류성당 내부.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었다. 무상을 전하는 생명들의 몸짓이 아름답다.
사계를 두고 변해가는 자연의 색조가 마냥 경이롭기만 하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풍경이 세상의 풍경만이 아니라 마음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인간도 어김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 질서에 순응하며 믿음을 키워가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음의 풍경을 함께 산책하기 위해 믿음의 고향 김제 수류성당을 찾았다.
김제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추수가 끝난 광활한 벌판을 따라 후백제 견훤의 한이 서린 고찰 금산사가 있는 금산면을 지나 화율리로 들어서 한가한 시골길을 한참 가다보면 상화마을이 나온다.
수류성당은 상두산을 마주한 상화마을 입구 넓다란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구원에 목마른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수류본당은 전주 전동본당과 함께 1889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본당이다. 신앙의 힘으로 뿌리내리고 친교로 새순을 내밀어 사랑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어온 지난 115년의 경륜을 웅변하듯 성당 맞은편에는 족히 100년은 넘어보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당산나무인듯한 이 고목이 성당과 어울려 운치있는 풍경을 자아내는 것이 여간 정겹지 않다.
수류성당이 자리잡기 전 당산나무 그늘 아래에 몰려든 사람들이 신분 구분이 없었듯이 성당을 찾는 이들도 높고 낮음이 없으니 얼마나 조화로운가! 수류성당의 이러한 조화로움이 마음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수류본당은 1895년 9월까지 모악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배재마을(현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자리잡았다가 그해 10월 수류에 있는 전주 이영삼 진사의 재실을 매입, 심산궁곡을 떠나 평야지대로 나왔다. 당시 주임이었던 라크루(파리외방전교회) 신부는 재실을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당시는 동학혁명이 막 끝난 뒤라 마을에 성당이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주민들은 떠나고, 그동안 제대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던 각처 신자들이 이주해와 주민 400여 가구가 모두 신자인 완전한 교우촌을 이루었다. 수류는 지금도 교우촌 명맥을 유지해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다.
현 수류성당은 1959년에 다시 지은 벽돌조 건물이다. 이전 성당은 프와넬(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설계해 1906년 착공, 이듬해 8월에 준공한 48칸의 목조건물이었는데 그 모습이 익산 나바위 성당과 흡사했다고 한다. 이 목조 건물은 1950년 9월24일 인민군들과 빨치산들이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 안에 모여 있는 신자들을 몰살하고자 성당에 불을 질러 전소됐다. 다행히 성당에 갇혀 있던 신자들은 화마를 피해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으나 인민군과 빨치산에게 체포돼 50여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또 수류에 피란와 있던 당시 전주교구장 김현배 주교와 신부 8명, 수녀 14명이 체포돼 전주교도소와 원평교도소, 금산면 내무소로 압송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휴전 후 수류본당 신자들은 구호물자를 적립해 성당 신축 경비를 마련했다. 신자들은 소실된 옛 성당처럼 목조건물을 짓지 않고 직접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와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지었다. 성당 지붕은 옛 성당이 불탈 때 주워 모아두었던 함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수류성당은 이렇듯 한국전쟁 순교자들의 피흘림과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자신의 안위보다 하느님 성전을 먼저 지은 신자들의 희생으로 지어졌다. 마치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낸 사람이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듯(마태 13,44 참조) 수류 신자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양식을 내다팔아 세상의 보물보다 더 값진 하느님의 집을 지은 것이다.
성당 내부는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 오히려 돋보인다. 나무로 치장된 제단에는 장막 위에 세워진 십자가와 그 양편에 성요셉상과 예수성심상이 장식돼 있다. 또 감실 앞에는 성모자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벽면 양편에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돼 있다. 이것이 모두다. 더 이상의 장식은 하나도 없다. 군더더기 없이 전례와 기도에 필요한 것으로만 꾸며져 있다.
수류성당은 지금 지붕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인민군 방화에도 이겨낸 함석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삭아 곳곳에서 비가 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수류 신자들도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경제가 최악으로 어려운 이때, 특히 수입 농산물 개방으로 농촌 살림이 궁핍해질 대로 궁핍해진 이때 자신의 것을 내놓아 성전을 보수하고 있다.
수류성당은 신부님과 스님이 지도하는 두메 산골 어린이 축구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가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최근 많이 알려졌다. 영화에 나오는 화율초등학교는 수류본당이 1909년 개교해 해방 때까지 운영해 왔던 인명학교의 후신이다. 영화에 나오는 수류성당의 서정적 풍경에 매료된 관광객들과 사진가들이 지금도 수류성당을 찾고 있다.
성당 뒤편 옛 돌담길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계단식 논과 밭, 그리고 야트막한 농가들. 처음 보는 외지인인데도 단감을 따서 반갑게 내미는 훈훈한 인심. 수류성당이 있는 상화마을이 더욱 마음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랑이 있는 삶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300여명 신자들이 마을을 이루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수류는 김영구ㆍ정재석ㆍ서정수 신부 등 본당 출신 사제 15명을 배출, 옛 교우촌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문의: 063-544-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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